조주세발 7
조주세발 7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04.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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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 봄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빛이 있으니
하유랑풍동유설(夏有랑風冬有雪)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네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마음에 쓸데없는 망념만 없다면
변시인간괘심두(是人間好時節) 지금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는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은 벚꽃이 활짝 피고는 또 지는가 했더니 복숭아꽃이 그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 7입니다.

간절하게 `불법의 적적대의'를 묻는 한 학인에게 조주 선사의 답은 이 무명의 수행자에게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구원의 해답이 될 수 있는 바로 그 절실함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맨얼굴을 찾으려고 내면을 파고드는 치열한 노력을 비웃기나 하듯이 또는 그 절실함을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조주 선사는 오히려 반문합니다. “아침에 죽은 먹었는가?”라고 말이지요.

이 대답은 자신만의 나르시즘에 빠져 있던 학인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 버리고 그가 “네 아침에 죽은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순간 그는 맨얼굴을 찾고자 했던 오랜 집착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합니다.

그렇지만 집착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집착은 그대로인데 단지 집착하는 대상만 바뀌었습니다. 기민한 조주 선사가 이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조주 선사는 다시 이 수행자에게 “그럼 발우나 씻게.”라고 답하면서 그에게 내재한 또 하나의 집착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이미 아침에 먹어버린 죽이니 조주 선사는 아침 죽으로 머릿속에 관념으로만 남아있는 그 집착하는 마음을 날려버렸다는 말입니다.

조주 선사는 이 수행자로 하여금 내면에 몰입하는 것도 막고 외면에 빠져드는 것도 막고자 하였던 건데요. 이는 내면이든 외면이든 집착하지 않아야 우리 마음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 활발하게 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지요.

죽을 먹든 발우를 씻든 중요한 것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아가며 그 어떤 것에도 노예가 되지 말라는 조주 선사의 자비심어린 간절함을 볼 수 있는 공안입니다.

다음에는 무문관 제8칙 해중조차(奚仲造車) 1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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