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보살'을 찾아서
`레디메이드 보살'을 찾아서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4.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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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배경은 머지않은 미래,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세상이다. 천상사라는 사찰의 안내 로봇인 RU-4는 스스로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오래 수행한 끝에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인명'이라는 법명으로 불리며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RU-4의 제조사 UR 소속의 한 엔지니어는 사찰의 요청으로 RU-4를 검사하러 방문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요청은 RU-4가 부처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엔지니어인 그는 부처인지 확인하는 것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며 `로봇의 오작동'이라는 판단을 내리지만 윗선으로의 보고는 망설인다.

그러나 `로봇의 오작동'을 알게 된 UR사는 부처라 존경받는 RU-4를 실패작으로 규정하고 폐기를 명령한다. 일개 피조물인 로봇이 인간을 현혹시키게 두어서는 안 되며, 욕망도 집착도 없이 봉사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의 해탈을 인정한다면 끊임없는 자기 부정 속에서 간신히 성취하게 되는 정각을 어떤 사람이 노력하여 얻으려 하겠냐는 주장 속에 폐기를 위한 발포가 명령된다. 발포의 순간 스님과 로봇 제조사 측 사이에 소동이 일어나고 그 순간 RU-4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모든 회로를 끊고 스스로를 셧다운 한다.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집착과 갈애, 선업과 악업, 깨달음과 무명이 모두 본디 空함을 본 로봇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로봇만이 득도한 상태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들이여, 당신들도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은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잊었을 뿐입니다. 이 로봇이 보기에 세상은 이 자체로 아름다우며, 로봇이 깨달음을 얻었건 얻지 못했건 상관없이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세상의 주인인 당신들 역시 이미 깨달음을 모두 성취한 상태이며, 그렇기에 당신들이 먼저 깨달은 로봇의 존재로 인해 다시 무지와 혼란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스스로의 마음속을 깊이 살피시어 깨달음의 보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교육은 보이는 것 이면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이전에 보았던 한 논문에서 선은 선이요 악은 악이고, 선과 악이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선은 악 속에 악의 형식으로 있으며,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악을 통할 수밖에 없다는 연구자의 주장은 보이는 것은 악이지만 그 이면의 선을 보아야 하고, 보이는 악을 넘어 선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탈의 경지에 이른 로봇 역시 비슷하게 말한다. 지금 눈에 비친 세상,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세상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이미 깨달음을 성취한 자들이라고. 악 속에 악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선이기에 지금 내가 노력하고 발전할 힘이 나듯, 이미 완벽한 세상 속에서 이미 깨달음을 성취한 존재이기에 정각에 이를 가능성이 열리는 것 아닌가?

봄꽃이 한창인 교정을 보면 절로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 안에 꽃다운 마음이 있기에 꽃을 보면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란다. 신문, 방송을 보면, 아니 나만 돌아보아도 다 시답잖은 사람들 가득인 것 같다. 그래도 그 사람들 안에 봄꽃 같은 아름다움 한가득, 정각의 깨달음 한가득, 선함 한가득이다. 힘을 내보자.

*위의 이야기는 김지운·임필성 감독의 영화 `인류멸명보고서'의 한 에피소드인 `천상의 피조물'의 줄거리다. `천상의 피조물'은 박성환 작가의 단편 `레디메이드 보살'을 원작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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