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인어를 믿나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너무 좋아하는 나이기에 지나칠 수 없었던 `인어를 믿나요?' 그림책. 제목을 마주하고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19년 세계의 그림책 상을 세 개나 받았다는 소개에 궁금함과 호기심이 더해졌다.
`인어를 믿나요?(제시카 러브, 2019)'의 원제는 `Julian is a Mermaid'로 `줄리안은 인어다'로 번역할 수 있겠다. 주인공 줄리안은 소년인데 나처럼 인어를 좋아한다. 할머니와 수영장을 가는 줄리안의 눈에 인어들이 보인다. 줄리안이 보고 있는 인어는 젊고 예쁜 여성들이다. 줄리안은 그들을 보며 자신도 인어가 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나도 인어인데.”라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온 줄리안은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머리에 화초로 만든 가발을 쓰고 입술에 꽃술로 색을 입히고, 레이스 커튼으로 인어 꼬리를 만든다. 인어가 되어 한 손을 번쩍 든 줄리안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할머니에게 인어 모습을 들킨 줄리안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할머니는 줄리안에게 진주 목걸이를 선물한다. 인어에게는 진주 목걸이가 어울린다고. 그리고 인어 축제에 같이 가자고 한다. 인어들의 행렬에 함께한 줄리안과 할머니의 표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놀랍도록 섬세한 감정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는 심사평과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 전제인 개성과 자기 몸에 대한 긍정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고 한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책을 보면서 불편하거나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 인어가 되고 싶은 줄리안의 마음이 살포시 와 닿았고 할머니의 아련한 눈빛에서 줄리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보여 오히려 따뜻했다. 할머니도 한때는 인어였고 줄리안을 통해 아직도 자신이 인어라는 것을 자각하는 듯한 장면은 오히려 통쾌했다. 이 책은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어린이, 여성, 성 소수자, 노인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불편할 수 있는 주제를 소년의 꿈에 초점을 맞추어 어른이, 사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상담하며 다양한 자기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난다. 내가 만난 성 소수자들은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사랑의 모체인 가족에게 상처를 받고 단절의 아픔을 호소한다. 또한 세상의 근심을 모두 짊어진 듯한 표정의 어머니는 딸의 성전환수술을 하겠다는 선언에 상담자를 잡고 울며 호소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얼마 전 성 소수자로서 여군으로 남고 싶었던 젊은이의 사망 소식은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며 버텨야 할 차별과 시선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보여준다. 성 정체성을 나와 다르게 가졌다고 문란한 성범죄자 또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차별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은 성장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하며 자아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의 성격은 어떠하며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성 정체성의 확립도 포함된다. 성적 취향 또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가족이, 사회가, 국가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를, 가족이 나를, 사회가 나를, 국가가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연령·인종 등을 이유로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하자는 차별금지법을 여러 차례 발의했지만, 아직 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 많은 줄리안이 있다. `인어의 꿈을 가져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자신이 원하고 되고 싶은 것을 허락받아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