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칠순 잔치에서
어떤 칠순 잔치에서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4.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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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오늘 칠순 잔치에 초대를 받았어요. 평균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환갑이나 칠순의 의미도 많이 퇴색해서 예전처럼 너도나도 하는 잔치가 아니라서 선뜻 찾아간 잔칫집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안 선생은 훤칠하니 60대처럼 활기가 넘쳐 정말 칠순이 맞느냐고 의심된다는 인사부터 했습니다. 경로당 앞마당에 천막 3개를 이어 치고 천안에서 왔다는 사물놀이패가 분위기를 띄우는데요. 아드님이 천안에 살아서 아마 그곳에서 모든 준비를 한 것 같았습니다.

사물놀이패가 한참을 둥당 거리다가 그치더니 이어서 난타 패가 큰 북을 신나게 두드려대며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흥이 많은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고 추임새를 부추겨서 잔치마당이 떠들썩하니 고조되는 중에 주인공 가족들의 케이크 컷팅식이 이어졌습니다.

아들 둘만 낳아 잘 키우신 주인공 부부에게 아들 내외 두 쌍이 나란히 서서 술을 따라 올리자, 오늘의 주인공은 감격해서 자꾸 눈을 끔벅이더이다. 이슬이 맺힌 눈 붉어진 얼굴로 시선마저 어디에 둘지 몰라 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찔끔 눈물을 훔쳤습니다.

자식들 잘 키우겠다고 서울로 올라가 온갖 고생 다 하고 늘그막에 고향으로 되짚어 내려온 님은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듣기에는 닭을 식당에 대주는 장사를 하셨다던가? 털털거리는 자동차 운전을 신물 나게 해서 시골로 내려온 후에는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전에 얻어들은 기억이 납니다. 오늘 칠순 잔치를 떡 벌어지게 마련한 두 아들 앞에서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으리라.

부모님께 술을 따라 드린 후 큰 아드님이 마이크를 잡더니 “여기 축하해주러 오신 여러분, 오래오래 사셔서 우리 아버지 팔순 잔치 때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팔순 잔치는 서울 육삼빌딩에서 모시겠다고 약속드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큰 박수를 쳐댔지요.

효자들이여, 세상에 이런 아들들 없어요.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자꾸 눈을 끔벅거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언제부턴지 환갑이나 칠순이 되면 고작 식구끼리 밥 한 끼 먹는 게 고작인 세상이 되었는데 이렇게 떡 벌어지게 잔치까지 해주는 아들이 얼마나 있느냐면서 여기저기서 부럽다, 부러워. 야단입니다.

주인공 안 선생은 아들 내외들을 주욱 세우시더니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부자여유! 큰아들 내외를 가리키며 재산목록 1호, 둘째 아들 내외를 가리키며 재산목록 2호.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면서 말입니다.

자식들은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효자들이랍니다. 대처에 나가 직장에 다닌다니 바쁘기도 할 터인데 주말이면 빠짐없이 내려와 농사일을 거들며 엽엽이 부모를 챙기는가 하면 모처럼 만난 고향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누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아들들은 안 선생 개인의 아들이라기보다 집성촌인 동네의 아들들 같습니다.

남들보다 제대로 입히지도 못했고 공부도 많이 못 시켰다고 마음 아파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아버지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칠순 잔치 부럽습니다. 존경합니다.

늙고 힘 빠지면 자식들보다 더한 보물이 있을까요? 행복의 원형은 꾸민다고 꾸며지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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