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완장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4.0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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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완장을 벗었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온종일 책을 들고 있으나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멍하게 있다가 울리지도 않는 애먼 스마트폰만 열었다 닫았다 했다.

문학회에서 2년 동안 사무국장 소임을 맡았다. 어느 단체이건 회장은 총괄이고 실무자는 사무국장이다. 회의를 주관하고 예산을 편성하여 집행하며 결산까지 해야 한다. 전반적인 운영을 기획하니 책임이 막중하다.

처음 낯선 완장을 찼을 때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쓸 준비도 되기 전에 갑자기 얹힌 감투가 낯설고 불편했다. 발등에 떨어진 창립 1주년 기념 및 동인지 출판기념회가 부담되었다. 한 달 동안 머릿속에는 난생처음 치르는 행사에 진행자라는 완장이 무지근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날 때부터 새가슴인 데다가 간은 콩알만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벌게졌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려 준비되었던 말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스러졌다. 그러니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왜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모든 행사가 그렇듯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고 신경이 쓰였지만, 당일은 큰 일없이 잘 넘어갔다. 조촐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잘 치렀다. 입에 발린 말일지언정 진행자에 대한 치하가 기분 좋았다. 완장이 내게 준 부가가치였다.

따지고 보면 직책이라는 완장은 사회와 조직에 봉사하기 위한 공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봉사라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체를 위하여 누군가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서 하는 것이다.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차기도 하고 벗기도 한다. 식당에서는 손님이 완장이고, 비행기 안에서는 승객이 완장이다. 살아가며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그 간극이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완장'이라면 대개 헌병의 완장, 학생회 선도부, 교통경찰이 찬 완장을 떠올린다. 두려움의 상징이고 부정적인 의미가 먼저였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완장이 전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소극적인 사람을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긍정적인 면이 커다란 장점일 것이다.

내가 완장을 찬 지 일 년이 지나니 그렇게 부담스러웠었던 자리가 헌 구두처럼 편해졌다. 일머리를 알게 되니 한결 수월했다. 한 가지 행사를 마칠 때마다 성취감에 마음이 뿌듯했다.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며 완장의 무게를 즐기고 있었다. 간혹 이런저런 신경 안 쓰게 완장을 벗으면 홀가분하겠다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벗으려 하니 한 자락을 여미고 싶은 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심보일까.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은 그가 맡은 역할이 아닐까. 이제 맡았던 완장을 벗고 보니 몸도 마음도 한 뼘은 자랐지 싶다. 누구 앞에 나서서 말할 때 버벅거리지 않고, 얼굴이 벌게지지도 않을뿐더러 새가슴이 벌렁벌렁하며 두방망이질 치지 않을 것 같다. 콩알만 한 간이 알밤만 해져 어리보기 티를 조금이나마 벗었을라나.

구석에 움츠리고 있던 나를 한복판으로 끌어내어 야물게 해 준 완장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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