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나무다. 생명이다 - 65주년 신문의 날에 부쳐
신문은 나무다. 생명이다 - 65주년 신문의 날에 부쳐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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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있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천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양하 「신록예찬」中> 벚꽃은 하마 속절없이 지고 말았으되 어느 골목길 담장엔 명자, 개나리, 조팝나무, 하얗고 빨갛고 노란 꽃이 한꺼번에 피어 유난히 발광이다. 어디로 눈길을 주던 온통 호강인 사방천지. 꽃구경도 호사롭지만 이 시절 신록이 나는 훨씬 더 좋다. 먼 곳으로 눈을 돌려 산천을 둘러보면 이제 막 연둣빛으로 단장하는 나무들의 건강한 성장이 싱그럽고, 발밑에는 포슬포슬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의 청량함이 기특하다.

이양하가 「신록예찬」을 처음 발표한 해가 1947년. 우리 지역에 신문이 처음 발행한 때와 비슷하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이양하가 신록을 노래했던 5월의 신록이 한 달이나 훌쩍 앞당겨진 과속의 시대를 지금의 우리는 살고 있다. 어지러운 빠름 속에서도 새싹이 돋아나고 가지 끝에서 새순이 움트는 연두의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치열한 쟁투가 있다.

홀연히 뿌려진 씨앗이 굳은 껍질을 깨고, 또 언 땅을 견디며 기다렸던 봄을 맞아 용솟음치는 일. 싹이 트면 수평의 지상과 맞서 당당하게 하늘로 향하기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하는 안간힘. 물길과 양분을 찾아 끊임없이 캄캄한 땅속을 헤치며 깊고 넓게 뿌리를 내려야 했던 인고의 시간. 허공으로 팔을 벌려 잎사귀를 키우고, 언제나 태양을 향해 갈구하며 광합성을 기다려야 했던 긴 시간.

세상 모든 식물의 고단한 쟁투는 신문을 빼닮았다.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어지러운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어디서든 기쁘거나, 혹은 슬프거나 억울하고, 때로는 음모와 부정,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작은 소리라도 놓칠까 조바심에 귀를 열어야 하는 긴장.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의 힘든 선택으로 도덕과 평정심, 그리고 지혜를 짜내야 하는 고단한 신문쟁이의 삶은 신록의 나무와 닮았다.

도심의 벚나무 꽃잎 처연하게 날리는 대신 먼 산벚꽃 차례를 기다려 화사하고, 겨우내 두터웠던 무채색을 밀어내며 나뭇가지 끝에 연둣빛 청춘이 싱그러운 기운이 나는 꽃보다 더 좋다. 먼 곳을 응시하던 눈을 거두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더라도 발아래 연초록으로 어김없이 빛나는 작은 풀들의 향연.

다만 우리 인간은 온갖 식물들의 숨소리와 눈에 띄지 않는 성장, 그리고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는 안간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호흡으로 인간의 숨쉬기가 얼마나 쾌적했는지, 허공으로 높고 넓게 펼쳐진 잎사귀들로 인해 폭염과 소나기를 피하고 안식을 얻으며 얼마나 커다란 위로를 받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독보적인 과학 실학자 홍대용이 사람과 동물, 초목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물균(人物均)'사상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세한 움직임과 들리지 않는 숨소리, 그리고 씨앗과 열매를 만들기 위한 식물의 고단하고 장엄한 쟁투를 알거나 깨닫기 위한 노력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 같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조절)가 인간의 예의라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먹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군락을 지어 가지를 뻗는 것은 초목의 예의다. 인간의 입장에서 물(物)을 보면 인간이 귀하고 물(物)이 천하지만, 물(物)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물(物)이 귀하고 인간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物)은 균등하다.”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피력한 홍대용의 `인물균(人物均)'은 인간과 사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살벌한 가지치기로 아직도 초록이 깃들지 못한 버즘나무 가로수를 보며 신문의 날을 생각한다.

간섭과 훼방 없이 자유로운 나무와 신문의 길. 부디 모두가 생명처럼 소중하게 길이 강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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