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
트로트 열풍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4.05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트로트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떠들썩하다. TV만 켜면 어김없이 옛 가요들이 흘러넘친다. 내 이웃들도 난리다. 좋아하는 가수 팬클럽에 가입하고 댓글도 쓰고 선물도 보내고 회비도 쾌척하는 등 신바람이 나 있다. 70이 넘은 늙은이들이 한껏 젊어진 듯 흥얼거리기도 하고 온몸을 흔들어대기도 하는 등 흥이 차고 넘친다.

코로나 시대에 유일하게 살맛 나게 하는 것, 꺾어 부르는 가수의 구성진 노래에 따라 울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린다고 좋아서 야단이다. 트로트 한 곡도 제대로 부를 줄 모르는 나도 은연중에 <사랑의 콜센타>를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다.

까똑까똑까똑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조ㅇㅇ이 부른 <신라의 달밤> 들어 보셨어요? 국어 샘이 쓴 평도 보세요”라며 글을 첨부했다.

“선생님들도 트로트를 좋아하니?”

“그럼요, 요즘엔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고 실용음악이란 학과도 있는데요? 조용필이 부른 `친구여',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그리고 우리 준호가 좋아하는 `마법의 성'도 교과서에 실려 있어요.”

허 참, 유행가를 학교에서 배운다니…,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TV에서 대중가요가 흘러나오면 단번에 채널을 돌려버리던 때가 있었다. 두드러기라도 날 듯 의식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지낸 적도 있었다. 6~70년대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이해할 것이다.

현재는 트로트라는 어엿한 장르로 자리매김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전에는 어디 그랬는가? 유행가, 저질, 삼류. 딴따라, 등등 배운 사람들일수록 질시하고 무시하기 바빴다.

학교에서조차 대중가요는 설 자리가 없었다. 요즘 비행 청소년이 피우는 담배처럼 단속의 대상이었음을 상기해 본다. 오죽했으면 음악 실기 시험에서 꾸밈음을 유행가 식으로 꺾어 부르면 감점 처리까지 당했을까?

있는 집 자손들만의 경연장이기도 한 그때의 교육은 평등이나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나 다닐 수 없는 학교여서 특권층을 겨냥한 차별화와 우월감을 심어주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배운 사람'은 절대로 유행가 따위를 흥얼거려선 안 되는 분위기였다. 격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유행가를 부르지 않는 것이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었으니.

융통성마저 없는 말 잘 듣는 모범생들에게 주입된 사상 같은 금기의 조목조목들, 영화관, 행락시설 가지 않기, 유행가 부르지 않기, 저녁 7시 통금시간 지키기 등등 열심히 따를 줄만 안 나는 학용품이 떨어져도 밤 7시가 넘으면 사러 가지 않을 정도로 성실히 지키던 그야말로 융통성 제로여서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고집스러운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노래를 불러야 할 기회가 있으면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그저 음악 시간에 배운 가곡을, 그것도 원어로 불러제꼈던 뻔뻔함이 생각난다. 이제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시쳇말로 배운 티 내고 잘난 체하는 재수 없는 나를 참아준 그때의 이웃들에게 늦은 사과라도 하고 싶다.

하긴, 하루가 다르게 법도 바뀌는 세상 아닌가? 어제는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늘은 진리가 아닌 것, 많고 많다. 하물며 교육도 시대를 따라 바뀌며 오늘에 이른 것이니 내 탓 네 탓 할 것 없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우화 같은 얘기들로 치부해야 마땅할 것 같다. `배운 사람'이란 어쭙잖은 자존감 때문에 마음껏 즐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산 내 지나간 날들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전성기를 맞고 있는 트로트! 더 활짝 피어라, 꽃처럼 활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