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고릴라
아버지와 고릴라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4.0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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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요즘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심리 상담과 독서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그림책 공부, 그림책 심리지도 등 그와 연관된 정보가 눈길을 끈다. 그중에는 그림책 작가 공부도 있는데 그들의 삶과 작품의 관련성이 궁금해져 연구 논문을 찾아 읽는 시간을 가져본다. 논문을 읽다가 다시 찾은 오늘의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1983)'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모두가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그 이유를 그의 작품에서 찾아본다면 그가 그림책에 그려내는 자유로운 환상은 우리가 관계에서 경험하는 소외감을 통찰하게 하고,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 처음 만났던 책이 `고릴라'인데 줄거리는 이러하다. 소녀 한나는 아빠와 살고 있다. 한나는 아빠와 놀고 싶지만 아빠는 업무로 늘 바쁘다. 자신의 생일이 되면 아빠가 좋아하는 고릴라 인형도 사주고 동물원도 데려가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기다리지만 그날도 아빠의 등만 쓸쓸히 볼 뿐이다. 그날 밤, 아빠가 선물한 고릴라 인형은 아빠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한나를 동물원에도 데려가고 극장에도 데려간다. 고릴라는 아빠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한나에게 선물한다.

우리는 고릴라를 보며 아빠를 떠올린다. 고릴라에게서 힘이 세고 투박한 이미지를 갖는다. 그것은 고릴라를 통해 보이는 상징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심적인 표상은 여기에서 나의 경험으로 더 들어간다. 고릴라를 통해 아버지를 경험한다. 아버지의 강력한 힘이 나를 보호해주기를 원하고 그 안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특별하게 대할 것이라는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동물 중에 고릴라를 가장 좋아하며 이 책으로 훌륭한 아버지를 기릴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그에게도 고릴라가 상징하는 것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고릴라'에는 한나와 아빠, 고릴라가 등장한다. 어머니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부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나에게 아버지는 더욱 중요하다. 한나는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한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기심리학자 코헛은 인간이 건강한 자기를 발달시키려면 자기대상과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나에게 아버지는 코헛이 말하는 이상화 자기대상 축이다. 한나는 그 대상을 동경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전능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 여유가 없다. 한나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자기대상이다. 보통 자기대상은 어려서는 부모, 청소년기에는 친구, 성인이 되어서는 애인에서 배우자, 자녀로 대체된다. 그들을 통해 나는 꽤 괜찮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자기대상은 심적 안정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아버지의 돌려진 등은 한나의 자기대상 축의 무너짐과도 같은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고릴라를 통해 한나가 건강한 자기를 갖도록 돕는다.

나는 어렸을 적 엄마에게 혼날 때면 좌절감과 수치감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곤 했다. 주말에만 집에 오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태워줄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가 흔들거렸지만 아버지의 등을 꼭 안고 있으면 안전하고 행복했다. 아버지의 적절한 칭찬과 지지는 나를 괜찮은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서는 자기대상들이 자주 보인다. 작품 속 소외된 주인공이 무조건적인 공감을 받고 관계적 친밀감을 획득하며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관계의 도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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