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은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가
`난·쏘·공'은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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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을 `고전'이라 이른다. `고전'은 또 `어떤 분야의 초창기에 나름의 완성도를 이뤄 후대에 전범(典範)으로 평가받는 저작 또는 창작물'로 정의된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수많은 한국 현대소설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충분히 당당하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中

소설 속 `천국'과 `지옥'을 굳이 들춰 낸 것은 부동산을 향하는 이 나라 백성의 중단 없는 탐욕이 40년이 넘도록 계속될 뿐만 아니라 그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12개 단편의 연작 소설집「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1978년 6월 초판이 발행되었다. 개발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산업사회의 그늘을 고단하게 살아가던 공장 노동자는 40년이 지난 후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의 위태로움으로 악화되고 있고, 언제든 잘릴 수 있으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은 더 깊고 높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며 바깥으로 자꾸만 내몰리던 도시 빈민은 지하에 스며들거나 쪽방에 갇혀 무수한 햇볕을 간절히 동경하는 처지가 되었고, `내 집'을 꿈꾸는 것은 차라리 절망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 나중에 국민에 의해 타도된 독재로 무너졌으나 이승만 정권은 1948년 `경자유전의 원칙을 단호하게 적용해 지금까지 헌법정신으로 살아있다. 지주-소작제는 폐지되었고, 농민들은 마침내 직접 땅을 소유할 수 있는 현대사를 만끽했다. 자유와 민주의 4.19의거가 5.16군사정변에 짓밟혔듯이, 경자유전과 토지공개념은 개발독재와 자본의 탐욕에 의해 현대판 집주인과 세입자, 건물주와 임대상인이라는 더 새롭고 무자비한 신분질서를 만들고 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 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런 집 뜰에서는 꽃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날아 들어갈 벌도 없다. 나비도 없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中

소설이 현실에 고스란히 적용되는 세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난·쏘·공>을 `고전'으로 여기는 뜻은 개발독재의 시대인 1970년대에 소설을 통해 제기된 `역사에의 분노 혹은 각성의 눈물'(김병익)이 사람들의 심장에 깊이 새겨져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기다리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제군의 지식이 제군의 이익에 맞추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뫼비우스의 띠> 中.

세상은 이미 지식을 가장한 폴리페셔들과 정치, 경제, 언론, 문화를 막론하여 견고한 지배 권력에 의해 상상을 초월하는 그물 지옥으로 뒤덮여 있는지도 모른다.

`재벌 저격수'로 포장되면서 발탁된 김상조 청와대 전 정책실장의 탐욕은 전혀 개인적 일탈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만큼 `부동산 적폐'는 정권의 심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정책 실패는 그런 `지식인'을 잘못 쓴 까닭이다. 그러니 지금은 손질과 개선이 아닌 혁명이 필요한 시간.

우리의 <난·쏘·공>은 오로지 나눔으로의 공유와 공정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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