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봄물 들다
의림지, 봄물 들다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03.23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넓은 청전들에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농사준비로 분주하다. 논을 갈고 있는 트랙터 소리도 힘차게 들리고, 농수로에 쌓인 검불과 흙덩이를 걷어내어 봇도랑을 정리하는 농부의 삽질 소리는 잠자는 대지를 깨우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삼한의 초록길 양옆에 펼쳐진 넓은 청전들을 보며 걸어본다.

집을 나서 40여분 걷다 보면 아름드리 노송이 도열하듯 서 있는 의림지에 닿는다.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어느 쪽을 먼저 가야 할지 수십 년을 다녔지만 언제나 갈등이 생긴다. 어느 방향이든 저수지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양쪽 모두 경치가 아름다워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하리라.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지리여건상 제천 외곽으로는 남한강을 끼고 있지만 시내에는 강이 없다. 토질 또한 물이 잘 빠지는 석회암 사질토양이 대부분이라 척박한 농토에 가뭄이라도 들면 풍요로운 농사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을 터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그 먼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인공저수지를 만들어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관개농업을 시작한 지혜가 참으로 놀랍다. 2천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전들 넓은 대지에 농업용수를 마르지 않도록 대어주니 제천의 젖줄이며 선조(先祖)들께서 남겨주신 보배로운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의림지는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코스로도 단연 으뜸이다. 의림지 제방은 둘레가 1.8km 나 되며 이곳에는 수백 년씩 된 노송들과 버드나무, 벚꽃나무 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어 `제림'이라고 한다. 경호루, 영호정 등 누각들도 이 나무들과 서로 배경이 되어주며 의림지의 잔잔한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시킨다. 사시사철 산책길로 각광을 받고 삼복더위에도 이곳에 들어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저수지를 보면 더위가 사라지고 마음도 후련해지는 곳이다.

노송들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의림지 물에 몸을 담근 걸까. 자태를 뽐내며 마주 보고 거울 놀이에 빠졌다. 이에 질세라 수양버들은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물을 희롱하며 봄바람에 그네를 타고 있다. 오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넓은 저수지를 오가며 자맥질을 하느라 분주하다.

오리들 한 무리가 순주 섬에서 휴식을 하나보다. 저수지 가운데 조그만 섬이 하나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의림지 준설 공사를 하였는데, 여기에 강제 동원된 인부들이 가난으로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힘겨운 작업을 하였다 한다. 힘이 없어서 가운데 쌓아놓은 흙더미와 돌들을 밖으로 다 가져오지 못하여 남은 것이 섬이 되었다 하니, 오래전 이 땅에 살다 가신 분들의 피와 땀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섬이 생기게 된 배경은 가슴 아프지만 지금 의림지를 바라볼 때 넓은 저수지에 순주섬 하나가 주는 풍경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의림지 곳곳에 봄물이 들었다. 수양버들 늘어진 가지에 연둣빛 물이 들어 곧 푸른 잎이 나올 것 같다. 노송들도 더욱 푸르러 질 터이고 벚꽃나무도 꽃눈이 봉긋하니 머지않아 팝콘처럼 터져 봄의 절정을 이루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