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해야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해야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1.03.21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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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취재팀(부장)
하성진 취재팀(부장)

 

정부는 지난해 8월 화훼산업 발전 및 화훼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재사용 화환 표시제'를 도입했다.

3단 화환 재사용에 따른 소비자 기만과 화훼 생산 농가의 매출 하락 등의 악순환을 방지하고 건전한 꽃 소비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다.

생화를 재사용한 화환을 판매하거나 판매 목적으로 제작, 보관, 진열하려면 재사용임을 표시해야 한다. 또 이를 소비자와 유통업자 등에게 알려야 한다. 위반하면 1회 300만원, 2회 600만원, 3회 이상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동안 화환 재사용은 예식장과 수거업체, 제작 업체 간 암묵적인 거래로 이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혼주들이 예식 후 놓고 간 3단 화환들을 예식장 측에서 5000원~1만원을 받고 수거업체에 넘겨주면 다시 돈을 받고 화환 업체에 판매한다.

통상적으로 소비자가 10만원을 주고 사용한 3단 화환이 1만원~2만원대로 예식장→ 수거업체→ 화환업체로 재유통되는 구조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화환 `재탕'을 억제하고 꽃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게끔 손질했다.

화환은 축하와 위로의 의미로 오랜 기간 우리나라 결혼·장례문화에 사용돼 왔다. 화훼산업 발전법이 다듬어진 취지는 이런 전통을 건전하게 계승하고 올바른 꽃 소비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다.

표시제 도입으로 재사용 화환의 비중은 대폭 감소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주문자가 경조사에 사용되는 화환을 굳이 `재사용 화환'이라고 표시된 제품을 쓰지 않는 까닭이다.

재탕 화환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수거업체들도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동안 예식장 측에 돈을 주고 사들인 화환을 제작업체에 웃돈을 받고 되팔아 이익을 남겼는데, 이제는 그런 유통구조가 불가능해진 이유에서다.

화환 설치와 폐기는 자연스레 예식장 몫이 됐다. 하지만 폐기 처리가 만만치 않자 대부분 예식장은 궁리 끝에 기존 방식을 택했다. 수거업체에 전적으로 설치 및 수거를 맡긴 것이다. 다만, 달라진 것은 화환을 넘기면서 오갔던 `돈거래'는 없어졌다고 한다.

예식장은 폐기 부담을 덜고, 수거업체는 꽃은 폐기하고 나무틀만 제작업체에 넘기면서 수익을 남기는 구조가 된 것이다.

대부분 예식장과 달리 청주 예식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식장 2곳은 아예 화환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폐기 처리가 어렵다는 게 이유다.

이들 예식장은 배달 온 3단 화환을 임의대로 폐기하고 리본만 떼서 자체 제작한 나무에 붙여놓는다. 이 때문에 신랑·신부 측과 마찰도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예식장 측은 화환 대신 고객들에게 대체용으로 `쌀화환'사용을 권유하고 있다. 식장 안에 모형 쌀 화환을 비치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리본만 바꾸고 있다.

대신 혼주에게는 쌀이 아닌 2만~3만원권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각계에서 불만이 쇄도하자 청주시가 행정지도에 나섰다.

예식장에 공문을 보내 “건전한 화환 유통문화 정착과 관련 업계와의 상생 도모를 위해 생화 화환이 반입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화훼농가와 중간 유통업자,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물론 행정기관의 정중한 요청에도 예식장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셈이다.

폐기처리를 수거업체가 도맡겠다고 하고, 소비자들도 원하는 마당에 꿈쩍도 안 하는 진짜 속내가 궁금할 따름이다. 군색한 논리 대신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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