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委 수술 급하다
저출산고령사회委 수술 급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3.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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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한민국 인구정책의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 직속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아닐까 싶다. 이 위원회는 참여정부 때인 2005년 9월 출범했다. 비록 좌절됐지만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는 천도(遷都)와 더불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견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당시 재정경제·교육·문화관광·여성부 등 12개 부처 장관과 민간전문가 등 24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정권에서는 명맥만 유지하다 2012년 10개 분과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재정비됐다.

2015년 이 위원회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자리에서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160조원을 쏟아붓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2차 계획의 반성과 보완을 토대로 마련됐다. 위원회는 2020년까지 당시 합계출산율 1.19명을 1.4명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호언했다. 소요예산이 200조원까지 추산됐었지만, 실제로 얼마나 집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천문학적 액수의 예산이 투입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 야멸찬 기본계획이 끝난 2020년, 바로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목표치인 1.4명과는 한참 동떨어진 0.84명으로 급락했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전망되는 2세가 1명도 안된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의 인구가 58년 전 인구를 통계로 잡기 시작한 후 처음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국가존망이 걸린 대재앙이 목전에 닥쳤음을 알리는 경보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철저하게 실패한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대해 그럴듯한 해명조차 없다. 참담한 결과를 분석하고 복기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바 없다. 행정안전부의 과장급 간부가 정부를 대신해 언론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 결혼과 출산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저출산은 오히려 앞으로 1~2년이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인구정책 실패의 책임을 코로나에 뒤집어씌우기로 작정했다는 예고나 다름없었다.

더 딱한 장면은 정부가 헛발질을 거듭하는 동안 일선 지자체들이 각자도생의 길로 찢어져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다. 저마다 인구유입과 출산장려를 위한 시책을 내놓고 경쟁하지만 요체는 `돈 풀기'다. 세째 아이를 낳으면 수천만원대 출산지원금에 주택자금까지 지원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외지에서 직원을 데려와 고용하는 기업에 포상금을 주고 전학온 고등학생에게 통큰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산모에게 20년짜리 연금보험을 들어주는 지자체도 있다.

공무원들은 실적을 할당받기도 한다. 그들은 그냥 인구 늘리기가 아니라 `전입인구 늘리기'에 동원된다. 주민등록은 옮겼지만 실제 거주는 다른 지자체에서 해 통계에만 잡히는 허수의 인구를 늘리는 편법이다. 대체로 외지의 친지들이 공략 대상이다. 할당을 채워도 관공서 볼일 있을 때마다 먼걸음을 해야하는 친지의 푸념을 듣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당연히 전입기간이 오래 가지도 않는다.

지난 2009년 이런 촌극도 벌어졌다. 경북 문경시 점촌5동 공무원들이 경계한 이웃 상주시 함창읍을 방문했다. 불과 한달새 점촌5동에 직장을 두고 살던 주민 70여명이 상주로 주민등록을 옮긴 현황을 전달하며 항의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이후 상주시는 이웃 지자체와 감정 상하는 일이 없도록 무리한 인구전입을 자제하라고 읍·면·동에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중앙정부와 연계되지 못한 지지체의 중구난방 인구정책들이 국가 인구 늘리기에 기여할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도 정책의 구심이 돼야 할 정부는 인구를 늘린 지자체를 뽑아 포상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만 연출할 뿐이다.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의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을 부추기는 것보다 최악의 결과를 내고도 변명 한마디 없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수술하는 일이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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