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
구경꾼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3.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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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음색이 청아하다. 땅속 깊은 곳에서 암반수가 터진 것처럼 시원하다. 경연 가수들의 음색은 가히 ‘천상의 소리’라고 불려도 될 듯했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랬다.
종합편성 채널에서 ‘미스트롯2’ 경연 프로그램을 막 마쳤다. 라운드마다 합격의 기쁨과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희비가 교차한다. 구경꾼도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기다가 탈락자의 눈물바람에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진다. 석 달 동안 자웅을 겨루는 노래 경연 덕에 내 귀가 호강했다.
내가 응원하는 참가자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효녀 가수가 되고 싶어서 나왔단다. 21살 때 아버지께 신장 한 쪽을 이식해드리는 바람에 배에 힘을 줄 수 없어 소리 공부를 접었단다. 그녀는 ‘아버지와 딸’을 본인의 이야기하듯 불렀다. 단시간에 올 하트♡가 터지며 예심을 시원하게 통과하였다. 
그녀는 탁월한 가창력과 탄탄한 노래 실력으로 당당히 두 번의 라운드를 성큼 올라갔다. 하지만 준결승 문턱을 코앞에 두고 결국 아쉽게 탈락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다시 기회가 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게임처럼 모든 것이 하루 사이에도 엎치락뒤치락한다. 준결승 무대를 준비할 시간이 잠자는 시간을 포함하여 20시간밖에 없었다. 구경꾼도 같이 몸이 달았다.
시간을 쪼개서 연습한 끝에 그녀가 3위로 당당히 결승에 올라갔다. 구경꾼들은 언택트 관객 평가단에게 점수를 많이 얻은 것은 언더독underdog 효과라고 했다. 나도 밤잠 안 자고 연습했을 그녀가 내 딸처럼 안쓰러웠다. 언택트 구경꾼의 우레와 같은 함성에 방송국이 흔들흔들했다. 
이변이 일어났다. 그녀가 결승에서 1위를 한 것이다. 결승전에서는 구경꾼에게 심사하는 특권을 주었다. 나는 내 표에 옆지기 표를 덤으로 얹어 보냈다. 구경꾼들은 엄청난 표 세례를 폭포수처럼 그녀에게 내리쏟았다. 반전에 반전이다. 오디션장의 마스터들도 놀라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의 효심이 세상 사람의 눈에 콩깍지를 씌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효를 다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못한 효도를 한 그녀가 가상하고 신통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살을 떼어준 효심에 구경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그녀에게 진眞의 왕관을 씌우고 영광스러운 왕좌에 오르게 했다. 그녀가 이번 경연에 우승한 것은 구경꾼의 심사 덕이었다.
구경꾼은 원래 구경만 하지 않는다. 때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가 무조건 고운 눈으로 보는 어머니가 된다. 그러다 흥에 취하면 경연 참가자의 노랫가락에 맞춰 어깨를 들썩들썩 한다.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지 못하고 판관이라도 되는 양 어쩌고저쩌고하며 거침없이 자기의 저울을 들이대는 것이 구경꾼의 심리다.
내 삶이 오디션장이라면,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며 빠름과 느림을 조절하면서 밸런스를 맞춰 노래를 부르리라. 비록 세월의 때가 끼어 텁텁하고 쉬지근한 목소리지만 음 이탈이나 안 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구경꾼의 양팔 저울의 추가 채송화 씨만큼이라도 내 쪽으로 기울었으면 좋겠다. 오디션장의 마스터처럼 ‘이런저런 것을 이렇게 고쳤으면 어떨까.’ 하며 솔직하게 지적도 해주었으면. 게다가 한 사람의 구경꾼이라도 이만하면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면 참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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