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다시, 시작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03.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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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아침부터 출근준비로 부산하다. 평소 입지 않던 하얀 블라우스에 연한 살굿빛이 감도는 투피스를 입었다. 만날 운동화만 신던 습관에서 오늘만큼은 옷에 어울리는 구두를 신고 머리에도 구불구불 한껏 힘을 주었다. 시간을 역행하듯 지난밤 춘삼월에 때아닌 눈이 내렸으나 이 또한 오늘 있을 행사에 던져주는 하늘의 축복이려니 받아들였다. 지난해를 건너뛰고 드디어 맞이하는 입학식,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지난 이맘때 그 끝을 모르고 달리던 코로나의 여파는 생각보다 힘이 세고 오래갔다. 사상 초유의 3월 개학은 물론 입학식도 정지되고 무한정 뒤로 미뤄졌다. 한껏 새 학기를 준비하던 교사들에게도, 입학의 꿈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도, 학부모님들도 모두 한결같이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새로 발령받은 부임지에서 첫발을 어영부영 그리 내디뎠다.

입학식을 치르지 못했으니 당연히 아이들도 만날 수 없었다. 직장생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만 하는 부모님들의 부탁으로 한 두 명씩 아이들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유치원 문이 열렸다. 첫날에는 두 명의 아이가 유치원에 왔고 며칠 후 대여섯 명이 또 유치원 문을 두드렸다. 초록이 눈부신 5월에 당도에서야 입학식도 건너뛴 유치원생 전원을 받아들이는 이상한 학사일정이 시작되었다.

올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해처럼 개학식도, 입학식도 없는 쓸쓸한 3월이 되진 않을까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벅찬 입학식을 하게 되다니 `반갑다'라는 일상적인 단어가 오늘처럼 각별하게 다가온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이 깊다.

입학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한 명 두 명 점차 부모님의 손을 잡고 제 키만 한 가방을 메고 교정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한껏 허리를 낮춰 아이와 눈인사를 하고 이름 목걸이를 걸어주며 체온도 잰다. 아이는 처음 겪는 이런 절차들이 낯선지 엄마 뒤로 숨으며 얼굴만 쏙 내밀지만, 그 모든 행동마저도 그저 천진난만 귀엽기만 하다.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부모님들은 밖에서 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교실로 들어선다.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작년에는 이마저도 취소되었던 행사 아니었던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간단하게 입학식 행사를 하고 학부모님들과 교실 밖 마당에서 간단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오늘의 행사는 끝이 났다. 다시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의 손을,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따라 유유히 사라졌다. 일상이 그저 흐르는 물처럼 자유롭고 당연했을 땐 몰랐던 순간들이 더없이 감사하고 고마움으로 길이 남을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다.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 유치원 넓은 놀이터와 꽃밭 사이로 봄빛이 완연하다. 이제 점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사방으로 꽃도 필 것이다. 내일이면 이 넓은 뜰 안에서 재잘재잘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도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천사들에게 아주 많이 동화책을 읽어 줄 것이고 조물조물 온갖 만들기를 가르쳐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했던 것처럼 너희들은 상냥하고 영리하고 소중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수시로 알려줄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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