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알파벳과 한글(훈민정음)
그리스 알파벳과 한글(훈민정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3.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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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는 서구 문명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왜 서구 문명의 그늘에서 살게 됐을까? 서구 문명을 기초로 해서 과학과 민주의 이념이 발생했고 과학과 민주가 세계를 지배하는 중심 테제가 됐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문명은 전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다시(re) 일어난다(naissance)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 처음 일어났을까?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일어난다.

사실 그리스 문명은 인접 바빌로니아나 이집트 문명에 비하면 후진 문명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로 유학을 가 선진문명을 배워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스 문명이 선진문명이 되어 인접 문명권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문명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건 그리스 문자 원인설이다.

그리스의 알파벳은 서구 언어의 뿌리이다. 물론 이집트의 상형문자, 수메르 문자, 히브리 문자들이 그리스의 문자보다 먼저다. 그리스 알파벳은 페니키아 문자를 본 떠온 것이 많다. 문자의 사용에 있어서도 그리스는 인접 문명권에 비해 뒤져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문자는 모음이 없지만 그리스 알파벳은 이들 문자와 달리 모음의 체계를 갖고 있다.

문자의 모음 유무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우리 말에 모음이 없다고 해보자. `문자'를 모음 없이 쓰면 ㅁㄴㅈ이 된다. ㅁㄴㅈ은 문자가 될 수도 있지만 민주, 무너져, 만주 등이 될 수도 있다. 모음이 있으면 `문자'로 뜻이 명확하게 정해지지만 모음이 없다면 ㅁㄴㅈ으로 쓰고 문자, 만주, 민주, 무너져 중에서 상황에 따라 골라서 정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단어를 써놓고 그에 대해 생각을 할 때 항상 현실 상황에 갖다 대봐야만 한다면 사람의 생각은 현실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게 된다. 문자에 모음이 없다면 사람의 생각은 현실 의존적이 된다.

문자에 모음이 있다면 단어의 의미가 문자만을 갖고 문자, 민주, 만주, 무너져로 정해질 수 있게 된다. 곧 현실 상황과 독립적으로 단어의 의미가 결정된다. 언어가 세상과 독립하여 자체적으로 의미 결정성을 갖게 되면 사람의 생각은 현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과 같은 현실 독립적인 학문이나 철학과 같은 순수 이론적 학문이 발생한 것은 모음을 갖춘 그리스 알파벳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학과 철학이 근대에 이르러 과학문명을 가능하게 했고 이를 통해 서구 문명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우리의 훈민정음(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들 한다. air: 에어, cat: 캣, iron: 아이언. 영어는 i로 쓰고 어라고 읽거나 아이라고 읽고, a라고 써놓고 에라고 읽거나 애라고 읽는다. 우리 글에서 이(i)를 써놓고 이를 어라고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말에는 앞에서 표기한 대로 필요한 소리를 나타내는 모음이나 자음이 다 갖춰져 있다. 훈민정음은 인간이 낼 수 있는 말소리를 모두 표기할 수 있다.

그리스 알파벳을 토대로 한 그리스 문명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보다 우수한 언어를 구비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는 왜 아직도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의료기술, IT 기술, 드라마, 대중가요, 여자 골프, 스포츠 등에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의 인문사회계의 문화나 학문의 수준은 어떤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여전히 남의 것을 베끼기에 급급하다. 세종대왕이 보면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생각은 우수하다. 세계적으로 머리가 가장 좋은 민족이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화, 학문 수준은 바닥이다. 이건 이유를 찾아서 고쳐야 한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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