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나무들에게
3월의 나무들에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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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3월 첫날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려 봄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하더니, 강원도 깊은 산 높은 고개엔 폭설이 내려 사람들을 다시 겨울 속에 가두는 심술을 부립니다.

이른 아침, 거리에 모처럼 3월의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가방을 짊어지고, 가방과 깔맞춤한 신발주머니를 손에 든 초등학교 1학년이 엄마 손을 꼬옥 잡고 학교에 갑니다.

그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마스크를 쓴 채로 신나게 재잘거리던 형아는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어 동생과 작별한 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립니다.

`불을 피우기/ 미안한 저녁이/ 삼월에는 있다'(박준. <삼월의 나무>)는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에게 삼월은 겨울이 지난 듯 선뜻 지나지 않고, 봄은 또 봄대로 더딘 발걸음으로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한 채 수줍게 다가왔습니다.

`겨울 무를 꺼내/ 그릇 하나에는/ 어슷하게 썰어 담고// 다른 그릇에는/ 채를 썰어 고춧가루와 식초를 조금 뿌렸다'는 <삼월의 나무>를 닮은 우리들의 3월은 싱그러운 봄동 겉절이를 그리워하면서도, 군내 나는 묵은 김치의 시큼한 맛을 아직 잊지 못하는 계절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을 하는 일은 어린이나 엄마 아빠는 물론 세상 모두에게 두루 커다란 역사이고, 비로소 드넓은 세상과 만나는 새로운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의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고 축복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어느새 2학년이 되어버린 어린이들은 한 살 어린 신입생들과 나란히 등굣길에 나서면서 설레는 마음만큼 더 큰 긴장과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코로나19 극복의 기대와 희망을 조금씩 키워가고는 있습니다만, 마침내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는 3월을 훌쩍 넘기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게다가 아직 어린아이들의 백신 접종에 대한 안심의 수준은 검증되지 않았고, 그리하여 두텁게 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새 동무들과 재잘거리는 즐거움 또한 최대한 삼가야 하는 등굣길의 두려움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우리의 끝이 언제나/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한다는 것에 있다'고 <삼월의 나무>는 노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깊은 뿌리에서 깊게 숨어 있던 물 기운을 끌어올려야 하는 큰 키의 가로수들은 아직 그렇다 해도, 처음으로 학교 가는 길 낮은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작은 나무들과 발아래 풀들은 이미 조금씩 낯익은 3월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저 두렵기만 했던 코로나19의 암울했던 기억을 떨쳐버리고, 갖가지 악담과 괴담, 가짜뉴스의 시기와 질투와 혐오를 뚫고 평화롭고 순조롭게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키 작은 나무들은 3월을 오래오래 기다려왔다는 듯이 잎눈과 꽃눈을 도톰하게 살찌우고 있으며, 무심하게 밟았던 풀잎들은 3월의 기운을 온통 끌어모아 꽃대를 곧추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3월의 우리는 떨리는 마음과 두려운 눈빛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꿋꿋하게 등굣길에 오르는 어린이들의 발걸음에서 희망을 읽어야 하고, 봄을 끌어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무와 풀들을 따뜻하고 살가운 눈으로 살펴보며 조금만 더 참아내야 합니다.

<삼월의 나무>는 `밀어도 열리고/ 당겨도 열리는 문이/ 늘 반갑다'며 노래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시인은 `저녁밥을 남겨/ 새벽으로 보낸다'고 다짐합니다. 싱그러운 봄나물로 밥상을 차리는 3월의 정성은 애틋합니다. 묵은 김치를 씻어내며 힘겨웠던 시절, 우리를 견디게 해주었던 식탁의 든든함이거나 견디기 어려웠던 삶의 무게를 나누고 더하며 덜고 보태는 3월이기를 바랍니다.

`멀리 자라고 있을/ 나의 나무에게도/ 살가운 마음을 보낸다//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는 시인의 소망처럼 처음 학교 가는 길에 나선 어린이들과, 백신으로 희망을 찾아가고 있는 어른들에게 두루 간절한 일상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흔들려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는 우리는 모두 3월의 나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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