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음식의 미학
제사 음식의 미학
  • 강석범 진천 이월중학교 교감
  • 승인 2021.02.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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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진천 이월중학교 교감
강석범 진천 이월중학교 교감

 

제사에 음식을 올리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돌아가신 가족, 어른에게 대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좋은 음식, 보기 좋고 싱싱한 음식, 그리고 정갈한 음식으로 준비합니다.

올해 설 명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가족 간 거리 두기 실천으로 부모님과 같이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대가족이 같이하지 못하니 차례 음식도 거나한 준비보다는, 소규모로 준비하는 모습이 주변에 많았습니다. SNS에서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후손들이 준비한다는 아주 간결한 제사상 사진이 올라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후손들의 수고로움이 더해져 만든 제사 음식들은 각 지역, 집안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기본적인 규칙은 있지만, 꼭 정법이라고 단정할 규칙은 없다고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집안의 경제적 형편도 고려해야 하니까 같은 지역이라도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긴 속담이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알아서 할 텐데 쓸데없는 훈수를 둔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미학적 조화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라는 말처럼 같은 음식도 어떻게 배치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풍성해 보이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엔 `푸드 코디네이터'란 직종에 자격증 시험도 있다 하니 충분히 가치 있는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색이 깨끗하다는 미술 용어를 `순색'이라고 합니다. 순색이라 함은 다른 색과 섞이지 않은, 쉽게 설명하면 말 그대로 원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색으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대개는 순색이 원근법적으로 가까이, 그리고 색이 혼합되어 탁해진 색들은 멀리 후퇴해 보이게 됩니다. 또한, 사물의 크기가 크면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껴지고 색 또한 선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보통의 제사상은 신위(돌아가신 분의 사진이나 지방 등을 말한다)로부터 절을 하는 자손 앞까지 4열 혹은 5열로 차려집니다.

자손 앞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열에는 가공되지 않는 붉은빛의 사과, 감, 대추 또 노란빛의 배 등 전형적인 순색의 큰 덩치가 놓입니다. 이는 미학적 원근법에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로 뒷줄에는 나물 종류가 배치되는데 뜨거운 불에 데쳐서 색상과 채도를 확 떨어뜨렸습니다. 채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색이 튀지 않고 차분하다는 것입니다. 그 뒷줄 탕류들도 몇몇 재료들이 섞인 중간색의 음식으로, 제사상 중앙 열에 차분하게 자리 잡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칙칙한 색감을 살짝 잡아주는 게 탕류 뒤 알록달록한 부침개류 들입니다. 물론 절대 맨 앞줄 순색 과일의 생생함은 넘어서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제사상은 산뜻한 순색의 음식들이 최전방으로 배치되고, 뒤로 갈수록 채도를 떨어뜨려 색채의 안정감을 주는 전형적인 원근법 미학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제사 상차림에 전통의 오방색(청, 적, 흰, 흑, 황)이 기준 되어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서양미술의 개념으로 보아도 제사상의 원근법적 해석과 색채의 조화로움에 놀랍니다. 붉은색과 녹색의 보색 관계는 물론 각각의 음식들이 전체 속에서 지루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형태감 또한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제사상은 아무리 상차림이 많아 울긋불긋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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