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고 향
  • 정인영 사진작가
  • 승인 2021.02.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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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인영 사진작가
정인영 사진작가

 

6·25 전쟁이 시작된 이듬해 섣달 초여드렛날 한반도의 중심 흐르늪에서 태어났다. 전날부터 진통을 시작한 어머니는 이튿날 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간 아버지가 집에 도착할 무렵에서야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위로 누나와 형에 이어 세상에 나와, 집은 비록 가난해도 별 고통없이 살아가는 부모님의 보살핌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을 떠나 보는 것은 아버지 등에 업혀 이십여리 떨어진 큰아버지 댁으로 명절을 쇠러 간것외에는 한번도 없었다.

추운 겨울 큰집에 가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큰아버지가 품에 안고 “쌀은 있니. 나무는 있느냐”며 허허 웃으시는 가운데 오랫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설날 차례를 지낸 후에 큰아버지와 아버지, 조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간다. 별로 높지 않은 산길을 걷노라면 아래로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와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여덟살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날 어머니께서 새로 사온 옷이 없어 안스러운 마음에 이웃에서 빌려 온 옷을 입혀 주셨지만 학교에 난생처음 가는 즐거움만 가득했다. 집과 학교가 한 동네에 있어 학교다니는데 힘든줄을 몰랐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니는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와 먹었는데 그것을 부러워 한 나도 학교 울타리 옆에서 집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었다. 학교 연못에서는 연꽃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교정에 그림자를 드리워 주는 여름이 참 좋았다.

잔디밭에는 대한민국 국토를 큰 돌과 흙으로 만든 주위에 무궁화가 있어 내 나라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심어 주었다. 마을 앞으로 늪이 있어 사계절 그물이 남한강과 어우러져 장미산아래 잘 생긴 산천이었다.

이른 새벽이면 여울물 흐르는 소리가 아침이 열리고 있음을 말해주며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강가에 조약돌옆으로 펼쳐진 넓은 초원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해질녘이면 마을 사람들이 강에서 하루종일 더위에 절은 피로를 씻어내며 웃음꽃을 피웠다. 밤에 강에서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물속을 비치면 돌틈사이에서 잠자는 물고기들이 신비스러워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내 어린 시절 고향은 이렇게 의미를 만들어내고,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그윽한 정취를 품어내고 있었다. 그 누가 가꿔 주지 않아 마냥 그대로 흩어지고 뒤엉켜 아무렇게나 있는 자연이 또한 싱그러워 좋았다. 그러한 세상에서 날이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고 비가 오면 오는 그대로 나에게는 낙원이었다.

내 나이 열일곱살이 되던 해 깊어가는 가을 고향을 떠나왔다. 그 모든 것과 함께 부모님곁을 떠나 난생처음 타향 청주로 온지 어언 오십년이 훌쩍 지나갔다.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한 지금 고향에 옛모습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참 많은 것을 두고 온 내 어린 시절의 흔적을 되살려 보고 느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다행이다. 두고 온 날들, 잃어버린 시간만이 사라졌을 뿐이지 나머지는 그런대로 남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데에 다소나마 안심이 된다.

이제는 가버린 아득한 날들, 추억의 고운 먼지를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것에 자그마한 만족으로 삼는다. 한가지, 남한강이 흐르던 마을앞은 넓은 호수로 변했다는데에 아쉬움이 둥지를 틀어 다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아픔을 되새기고 있다.

사라져 없어진 것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이제 마음 한구석에 두고 생각만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올해는 내가 꿈과 희망을 키웠던 국민학교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공부하며 커가는 아이들로 북적였던 그 학교도 지금은 고요속에 건물만 잠자고 있을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 공간이 되었다. 나의 잔뼈가 굵어온 고향은 이제 향수의 그늘속에서 이끼처럼 그 흔적으로 여전히 살아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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