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말
논어의 말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2.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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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설날. 전무후무한, 직계 가족도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행정명령이 발령 중이다. 그래도 설날이라고 딸네가 세배하러 왔다. “벌금 내라면 내지요.”하면서.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손녀딸에게 제일 먼저 눈이 간다. 아직은 2학년인데 마음은 몇 개월 전부터 이미 학년이 올라갔다. 온종일 궁둥이를 붙이고 공부하더니 스트레스가 쌓여 소화도 안 되고 가슴까지 답답하단다. 제 어미 말이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한다더니 목이 한층 길어지고 쇄골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랐다. 앞으로 대입 수능 시험일까지 10개월 동안 잘 견뎌야 할 텐데…. 가족 모두가 걱정이 태산이다. 제 혼자 힘든 싸움을 어떻게 견디나. 할미 눈에 항상 어린애 같은 손녀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손녀딸이 SNS에 『논어의 말』 헌문憲問편을 쫙 펴서 올렸다. `예전에는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학문했는데, 오늘은 남의 인정을 받으려고 공부한다.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학문의 목적이 왜곡된 데 대한 개탄이다. 이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 같아서 안타깝다. 사람은 마음의 성장을 경험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손녀딸은 하필 요쪽을 올렸을까. 고등학교 공부가 대학을 가기 위한 발판이고 대학교 공부는 취업이 목적인 것이 현실이다. 살아가려는 방편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수단이 되어야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을 벌써 알아차린 것일까. 제가 배우는 목적이 마음의 성장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강다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손녀가 배움에 크고 깊은 행복을 느끼려 한다고 생각하니 될성부른 재목 같아 대견하고 한편으로 흐뭇하다.

손녀가 읽는 『논어의 말』을 나도 들어보려고 인터넷서점에서 사들였다. 선배 문우에게 좋은 수필을 쓰려면 고전을 읽으라는 말씀을 누차 들어오던 터였다. 손녀가 읽고 느낀 감흥을 나도 느껴보리라 했다. 그런데 책꽂이 구석에 밀쳐둔 『논어』가 나 여기 있었다고 손을 내민다. 책 대여섯 장 넘겨 얌전하게 꽂힌 책갈피가 찬웃음을 짓는다. 어린 손녀도 감동하는 내용을 어렵고 지루해서 읽지도 않고 처박아 소장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내가 참 딱하다. 어차피 저자가 다르니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 보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논어를 말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인생을 충실하게 채울 수 있는 바른 길이 무엇인지 말이다.

열아홉 살 어린애만도 못한 부모다. 손녀딸은 교원대 국어교육과를 희망하고 어미 아비는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 부추긴다. 필시 어미 아비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주기를 바라서 일 것이다. 혹은 내 자식이 명문대학에 갔다고 과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손녀딸의 의지가 확고하다. “서울에 명문대학을 졸업하면 뭐 할 것이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겠다.”고 한다. 일찌감치 논어 헌문편에서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는, 과시하고 자랑하며 남들에게 우쭐대고 뽐내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한 배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논어의 말』에서 인생 수업을 듣고 어린 손녀딸의 결심에서 한 수를 배운다. 내가 배우는 수필 공부가 남에게 보여주고 칭송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한 뼘이라도 자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삶의 크고 깊은 행복을 느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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