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녀 `리디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녀 `리디아'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2.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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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자연의 시계는 봄을 가리키며 점점 다가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코로나와 추위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봄의 전령사인 새싹과 순서를 지켜 피는 꽃들을 생각하니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이 생각난다. 그림책에도 고전이 있다면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의 `리디아의 정원'이 그러할 것이다.

`리디아의 정원'속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리디아와 가족의 이야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 경제 공황기였다. 리디아의 부모는 오랫동안 일자리가 없어 형편이 어려워지자 리디아를 멀리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 댁에 보내기로 한다. 어린 리디아는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안전하고 익숙했던 환경을 혼자 떠날 것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천둥·번개를 만난 것처럼 너무도 갑자기 찾아온 큰 시련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리디아는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외삼촌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씨앗까지 싹트게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힘내. 파이팅!”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실례가 되어버린 요즘, 리디아는 그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스스로 힘을 낸 것이다.

누군가는 리디아의 이야기에서 회복 탄력성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낙관성을 이야기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누구나 원하고 해내고 싶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리디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이것에 대한 답을 애착에서 찾는다. 리디아가 성장하면서 경험했을 가족과의 관계에 그 답이 있다. 리디아와 가족이 위기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리디아는 삼촌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 모두 울었어요. 아빠까지도요. 그러다가 엄마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다 같이 웃고 말았어요.'라고 쓰고 있다. 리디아의 부모님과 할머니는 `어린아이는 몰라도 돼.'라고 하지 않는다. 가족은 시간과 상황과 감정을 공유한다. 그래서 리디아도 할머니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 공간에 같이 있다. 리디아가 외삼촌 댁에서 지내는 동안 가족과의 지리적 거리는 몇백 킬로미터였지만 리디아와 가족의 심리적 거리는 매우 가까웠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가 울었다는 사실은 리디아에게 무척 인상 깊었을 것이다. 그동안 아빠는 집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상징되었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온 것이다. 이것은 리디아에게 두렵고 불안하지만 수용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아빠와 엄마가 해내듯이 자신도 두려움과 불안과 맞선다. 리디아의 정원이 `빨강머리 앤'과 같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공통된 플롯을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한 후에야 더 깊은맛을 보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리디아의 성장은 과히 놀랍다. 씨앗을 돌보고 꽃을 피우고 황폐한 옥상에 정원을 가꾼다. 할머니가 리디아의 손에 쥐어진 작은 씨앗은 리디아 자신이다. 리디아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리디아가 말한다. “우리 원예사들은 절대로 일손을 놓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돌봄을 요구하며 징징거리지 않는다. `리디아의 정원'마지막 장면에는 리디아의 곁에 고양이와 개가 있다. 이제 리디아는 돌봄을 받던 상황에서 성장해 다른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됐다. 누구나 주머니 안에 작은 씨앗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돌보고 가꾸는 것도, 정원을 품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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