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연가
아버지 연가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2.17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아버지라는 이름의 아버지'의 저자 오승훈은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란 없다고.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좋은 아버지가 되기 힘든 여건과 자식들의 기대수준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삶의 궤적 때문일 겁니다. 가난해서, 무식해서, 무능해서, 권위적이어서, 엄마를 힘들게 해서, 술과 여색에 빠져서, 일찍 세상을 등져서 등이 그것입니다.

제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호방하고 착하기 그지없는 분이었으나 가난 때문에 호기롭게 살지 못했고, 7남매 건사하려고 뼈 빠지게 일했지만 자식들 대학은커녕 중등교육 시키기에도 벅찼으며, 50이 갓 된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54세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등졌으니 말입니다.

자식과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고 잘 살아보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세상잣대로 보면 결코 좋은 아버지 좋은 가장이었다 할 수 없음입니다. 두 아들을 성가시키고 손주까지 봤지만 돌아보니 저 역시 흠결이 많은 아버지였습니다. 살기 바빠서 어릴 때 같이 놀아주지 못했고, 대물림할만한 정신적 경제적 자산도 별무해서 입니다.

하여 70고개를 앞둔 적잖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존재와 의미를 음미해보고 곱씹어 봅니다. 세상에 태어나 두 번째로 구사한 단어가 아빠이고, 살면서 두 번째로 많이 부른 이름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어릴 때는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은 분이었으나 성장할수록 왜소해지고 약해지는 분. 부모의 아들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며,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 가족 앞에선 강한 척 허세를 부리지만 자신의 한계 앞에 속울음을 우는 여린 남자.

아버지란 성장통을 앓다가 등이 휘어지고 쇠잔해져가는 사내. 아버지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내 아들도 그리할 아버지란 이름. 그런 아버지를 자식들은 어릴 땐 아빠로, 철이 들면 아버지로, 어른이 되면 아버님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자식이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은 세 가지 뿐인데 타인이 아버지를 지칭하는 호칭은 많고 다양합니다. 아비·아범·애비·어른·부친·엄친(嚴親)·선친(先親)·춘부장(椿府丈) 등 `한국가족연구'에 실린 최재석의 `친족호칭일람표'의 39개 호칭이 이를 입증합니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낯선 호칭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부장적인 유교문화 속에 길들여진 아버지의 권위가 유물처럼 박제되어 있어 씁쓸합니다.

다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무엇이며,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로서 무엇을 남겨야 할까를. 아버지와 나 그리고 자식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를. 아버지의 정자를 통해 태어났으니 생물학적 유전인자는 물론이고 집안내력과 가풍을 위시한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까지 이어받는.

그러나 아들이 보는 아버지와 딸이 보는 아버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아들이 있고,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신랑감으로 고르고 싶어 하는 딸이 있듯이. 아무튼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자식들의 성장과 자립에 디딤돌과 버팀목이 되고 노후에 짐이 되거나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부부사랑도 돈독해야 하고, 노후대비도 되어있어야 합니다. 범사에 모범이 되고 이웃에 존경받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 없듯 완벽한 아버지란 없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을 뿐.

신자들이 창조주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듯 아버지는 위대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인간인지라 사랑에 웃고 비정에 웁니다. 응원이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행복하도록. 고개 숙인 이 땅의 아버지들이 활짝 웃는 세상을 위해 건배!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