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자
연대하자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2.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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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며칠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뜬금없이 한다는 소리가 `정인이'(유아학대사건) 얘기였다. `너 사회 운동하잖아'하며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좋은지 묻는다. 아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는 입에 거품을 물었고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올 지경이란다. 사실 난, 마음이 아파 기사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기력증을 느꼈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자괴감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사회운동? 시민사회단체 몇 군데 후원하는 일 외에 뒷짐 지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는 약자의 연대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래동화다. 지금 시대에도 노인과 어린이는 약자 중의 약자다. 그런 약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연대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이야기는 사나운 호랑이가 할머니가 사는 세상까지 침범하는 일로 시작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언제나 먹잇감은 약자다. 다 아는 내용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지만 평소에 늘 궁금했던 것은 팥을 심은 계절에서 동짓날까지 할머니는 왜 호랑이 피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였다. 팥을 심어 가꾸고 여름 장마 속에 자라는 팥을 보며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경험상 너무 기막힌 상황에 놓이면 도움도 청하지 못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속에 정신승리밖에 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동화 속 할머니 삶 자체가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든, 기력이 쇠하여 죽든, 희망조차도 꿈꾸지 않은 채로. 계절이 건너가는 동안 할머니는 큰 걱정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산비탈 돌밭에 밭을 갈고 사는 가난함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욕심이었을 수도 있겠다. 정작 도움을 준 것도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만큼 초라한 것들이다. 알밤, 자라, 물찌똥, 송곳, 돌절구(맷돌), 멍석, 지게를 보면 어디 하나 든든한 구석이 없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연대할 때 힘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 되었다.

할머니는 마을로 내려와 호랑이의 횡포와 폭력을 알렸어야 한다. 첫 희생자는 할머니지만 다음은 마을 사람들일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해 말해야 했다. 가진 힘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것도 좌시해서는 안 된다. 16개월 정인이 주위엔 촘촘한 보호망이 있었다. 그들 모두 미필적 고의의 범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모성애의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직한 메시지를 주지만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면 그에 상응한 의무는 당연하며 국가는 그것을 감시할 책임이 있다. 특히 공권력이 그렇다.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줘도 되는지 의문이다) 정인을 죽게 만든 부모뿐 아니라 정인이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고리의 관련자도 처벌해야 한다. 용기 내어 정인이 기사를 찾아보다가 어떤 카페에서 한 엄마가 개인의 이름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건을 접한 소회를 적은 글을 보았다. 진정서는 판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유무죄 판단 전까지 검토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하다 보면 포크레인이 소문 듣고 찾아와 함께 연대할 수도 있다는 말이 대아협(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학대 없이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는 자위의 말 따위로 살아있는 스스로를 위로할 게 아니라 문제 앞에 함께 공명하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나도 진정서라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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