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운칠기삼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2.0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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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심심해서 어디라도 휑하니 나돌고 싶어도 이내 바람 빠진 풍선 모양 주저앉고 만다. 몸살 날 지경이다. 이웃집에 가는 것마저도 삼가다 보니 더욱이 윤 여사네가 궁금하다. 겨울철마다 달려가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던 기억, 이맘때였다.

처음 귀촌해 살던 동네에 동갑내기 윤 여사네 집이 이웃에 있었다. 그녀는 삽삽하고 정 있게 사람들을 대해서 동네 아낙들 사랑방인 양 들락였다. 아무나 허물없이 드나드는 사랑방이랄까. 갈 때마다 네댓 사람은 모여 있곤 했었다. 겨울 한 철은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수십 년 함께 살아온 터라 친족보다 살갑고 허물없는 처지들인 것이다.

문화적 혜택이라곤 TV가 고작인 여인들의 여가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지 않은가. 농한기만 되면 자연스레 화투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잘 지내는 소위 짝꿍들이란 그들은 벌써 십칠 년째 모이는 화투방이라고 자랑삼아 얘기했었다.

처음 귀촌한 겨울, 오갈 데 없어 몸살 난 나는 아침만 먹으면 쪼르르 윤 여사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둘러앉아 열심히 화투를 칠 때, 나는 한발 물러나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는데도 너무 재미있었다. 짝 맞추는 것, 금세 알게 됐다. 고스톱, 쉽고 재밌다. 며칠 어깨너머로 익힌 수업일망정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한 사람은 광 팔고 세 사람이 치는 골수 4인방 체제에서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때가 있었다. 셋이선 아무래도 김이 빠진다나? 그들의 부추기는 눈빛에 따라 끼어 앉아 한판 거들게 되었다. 점당 100원이다. 시큰둥하다가도 화투짝만 잡으면 온몸에 긴장된 활기가 넘친다. 손에 쥔 화투 속에 뜨겁게 몰입하는 모습들이 대단하다. 치다 보면 상대방이 뭘 가졌는지 짐작하고도 남는 고수들이 다 되어서 17년을 함께 해 온 그들의 화투판은 손놀림 또한 기계만큼 재빠르다. 그런 틈에 끼어들어 초짜가 화투를 친다니 상상해 보라. 서로서로 적당히 밀어주고 견제하며 치는 노련한 17년 전통의 화투판은 교란된다.

`설마, 잃기만 하겠어?'똥뱃짱으로 기세 좋게 다가앉아 화투를 쳤지만 정말 화투판은 녹록지 않았다. 선수들의 노련하고 빠른 손놀림 속에서 허겁지겁 짝 맞추기도 버거운데 한 판 끝날 때마다 진 사람 둘은 하나같이 원망하고 투덜거리기 일쑤다.

“아, 이긴 사람 이롭게 치는 법이 어딨슈”기막힐 일이다. 뭘 받고 뭘 안 받는지, 뭘 내야 하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아 좀 가르쳐 줘용!”애교 섞인 내 비명은 굴러온 돌멩이의 변명이며 못 말리는 폭탄의 몸부림인 것이다. “피 같은 돈 잃어주고 좋은 소리도 못 듣고,”이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화투판을 뒤엎고 뛰쳐나갈까? 그리고는 발걸음을 딱 끊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어 대범한 듯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애써 잘 놀았다며 형님들 덕분이라고 한껏 인사치레 깎듯이하며 물러나던 일이 생각난다. 충청도 양반에 서울깍쟁이, 이곳에서 이 말은 정 반대다. 그들이 아슬아슬해 하고 굴러온 돌 보듯 하는 나지만 나는 운칠기삼을 굳게 믿는다. 실력보다 그날의 운이 좌우한다는 윤 여사네 화투판. 초자가 어쩌다 한번 이겼을 때의 그 감격, 얼마나 짜릿한 사이다 맛이던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자위하는 윤 여사네 화투방, 코로나가 어서 풀려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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