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기가 막힌 우연, 티티우스-보데 법칙
너무나 기가 막힌 우연, 티티우스-보데 법칙
  •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 승인 2021.02.03 1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을 찾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가끔은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듯이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기도 한다.

1766년 독일의 수학자였던 티티우스는 태양계 행성들의 거리 배열에 관한 규칙성을 발견하였다. 당시 알려진 행성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뿐이었는데, 이 행성들의 배열 순서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사이에 수학적인 규칙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1772년 독일의 천문학자였던 보데가 티티우스의 발견을 책으로 소개하면서 사람들에게 티티우스-보데 법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보데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행성에도 적용될지도 이 규칙성이 적용될지 모른다고 추측하였다. 하지만 그 규칙이 성립해야 하는 과학적인 원리까지 제시하지는 못하였으므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1781년 독일의 천문학자인 윌리엄 허셜이 망원경으로 태양계의 7번째 행성인 천왕성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티티우스-보데 법칙으로 예측할 수 있는 토성 다음의 행성까지의 거리는 19.6AU(1AU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인데, 천왕성의 실제 거리가 19.2AU로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천왕성의 발견으로 티티우스-보데 법칙이 실제로 성립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망원경으로 온 하늘을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1801년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피아치에 의해 새로운 발견이 이뤄졌다. 사실 티티우스-보데 법칙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법칙에 따르면 화성과 목성 사이인 2.8AU 지점에도 행성이 존재해야 하지만, 당시까지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피아치가 발견한 새로운 천체의 위치가 하필 2.8AU였다. 천왕성에 이어 티티우스-보데 법칙과 일치하는 두 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천체의 이름이 세레스인데 지름이 약 940㎞에 불과하다. 세레스는 발견 이후 약 50년 정도는 행성으로 인정받았지만, 이후에는 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세레스와 비슷한 거리에서 많은 수의 소행성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모두를 행성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해왕성, 명왕성이 차례로 발견되었지만 이 행성들의 거리는 티티우스-보데 법칙과 일치하지 않았다. 결국 이 법칙은 과학적인 의미는 없으며, 부족한 정보에 근거한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라고 판명된 것이다.

하지만 티티우스-보데 법칙으로 인해 새로운 행성의 발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소행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천체가 최초로 발견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새롭게 발견되는 천체가 늘어나면서 태양계 천체의 분류 방법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는 세레스의 궤도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최소제곱법이라는 새로운 수학 원리를 창안하기도 하였다. 이는 현대의 통계학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우연에 관심을 기울이면 때로는 필연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들어맞은 엉뚱한 법칙에서부터 출발했지만, 이에 관심을 둔 많은 이들의 노력이 결국 수학과 과학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이들에게 영감을 준 티티우스-보데 법칙에 `기가막힌 우연'정도의 수식어는 합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