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물끄물, 꼬물꼬물
끄물끄물, 꼬물꼬물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산업팀장
  • 승인 2021.02.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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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산업팀장

 

지난해 여름, 장마를 받아들이고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오래 방치된 빈집이 무너졌다. 녹음과 푸른 하늘의 고요함 속에 웬 날벼락,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발파로 철거하면 저런 현상이려나? 흙벽과 시멘트 기와가 텃밭 쪽으로 무너지면서 흙먼지가 뭉게구름으로 땅으로부터 일어났다. 미동도 하지 못하고 흙먼지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엄두가 안 난다는 말도 실감이 된다. 무너진 잔해는 어마어마했다.

무너진 건물은, 건축대장상 건축주를 찾을 수 없어 방치되고 있는 옛날 흙집이다. 철거나 수리를 하려 문의를 했지만, 건축주가 아니므로 할 수가 없다는 답변을 하면서 가끔 관리하라는 공문만 받았다. 관리를 하는 게 뭔지 구체적 설명은 없다. 건축주가 아니므로 철거를 해서도 수리를 해서도 안 된단다.

공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은 무너지고, 결국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중간 부분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텃밭의 작물과 화초를 망쳤기에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 버릴 수 없어 한쪽으로 쌓아놓는다.

길가 쪽으로 떨어지는 시멘트 기와는 떨어지는 대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은 내려서 안전한 곳으로 치운다. 흙은 텃밭으로 옮기고 펴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볏짚 처리다. 해를 거듭하면서 지붕을 얹었기에 두께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숫대를 엮어 볏짚과 이긴 흙을 앞뒤로 바르고, 그 위에 볏짚을 얹고, 해를 거듭하면서 기존 볏짚 위에 덧댔다. 그리고 지붕개량으로 시멘트 기와를 얹으면서 한 뼘 이상 두께의 흙이 더해졌다.

볏짚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흙과 시멘트 기와에 눌려 있던 볏짚은 솜이불이 부푸는 듯 부피가 커졌다. 볏짚만 별도로 쌓았다. 어릴 적 낟가리 쌓던 경험이 있어, 솜씨를 부려봤지만 영 마음에 안 든다. 무리하지 않고 시간이 될 때마다 사부작이다.

엉성하게 쌓아지고, 길량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볏짚 단이 숨이 죽었다. 노지라 눈비를 맞으면서 부피가 줄었다. 높이가 줄어들었는데 단순히 숨이 죽은 게 아니었다. 길량이들이 헤집어 놓으면서 주변으로 헤쳐진 것이다. 주변으로 흘러내린 바닥의 볏짚을 훑어 위로 올린다.

매번 훑어 위로 올리기를 반복한다. 길량이들아 좀 작작해라! 다른 놈들은 쏜살같이 자리를 떴는데, 막내 어리버리는 도망도 안 가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두툼한 볏짚이 더할 나위 없는 쿠션이지, 햇살까지 받으니 졸음에 겨운 어리버리는 끝내 자리를 지켰다. 볏짚 정리는 잠시 멈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로 산책간 사이 미루었던 볏짚정리다. 이참에 아랫바닥의 것을 좀 더 확실히 위로 정리를 한다. 이런 또 하나의 복병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졸음에 겨운 놈들이 아니라 아예 잠을 자고 있던 놈들을 건드렸다. 모두 꼬물꼬물 반응이다. 가장 밑바닥 물기가 닿는 곳에는 뽀얀 살색을 드러낸 지렁이 가족이 꼬물꼬물하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외부의 환경에 반응하는 미약한 경계의 움직임이다. 조금 걷어 낸 한 줌의 볏짚 위 쥐며느리는 줄행랑을 치는 중이다. 지렁이 가족이 이주하지 않도록 쥐었던 볏짚으로 밀어 넣고, 중간 부분을 정리한다. 이런 엄지만 한 굼벵이다. 이 녀석도 꼬물꼬물, 한두 마리가 아니다. . 안온한 그들의 보금자리를 외부의 거대한 인간이 건드린 것에 대한 무언의 방어다. 쌓아놓은 볏짚 뒤에서는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까지 난다. 볏짚 정리는 얼마간 중지다.

“아침부터 끄물끄물하네!”, “또 비가 오려나?”

비가 왔으면 좋겠다. 노지의 볏짚이 눈비를 맞이하여 많은 것이 사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보금자리가 된다. 볏짚 삭는 냄새가 구수하고, 김이 모락모락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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