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댕이 골 연가
검댕이 골 연가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01.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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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햇살이 참 좋다. 어디론가 출발하기에 좋은 날씨다.

구불구불 몇 구비를 넘고 넘어 도착 한 강원도 검댕이 골, 사람 발길이 뜸한 이곳 바람이 달달하다. 청주에서 해가 창창할 때 출발했는데 검댕이 골에 도착한 지금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다.

오랫동안 비워놓았던 집안에는 냉기가 가득 차있다. 서둘러 벽난로에 불을 피웠다. 장작 불꽃이 냉기를 쫓아냈다.

겨우내 아니 어디 이번 겨울뿐인가. 지난해는 코로나로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유를 잃었다. 잘나오던 TV가 화면정지 상태가 된 것처럼 일상이 멈추었다.

우리는 종종 세속을 떠나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삶을 즐겨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설혹 기회가 생겨도 집을 떠나 며칠 씩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잠시 내가있던 자리를 비워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간다.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한계령을 넘어 강원도로 떠나고 싶었다. 문정희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중략)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 오 눈부신 고립”(생략) 싯구처럼 눈이 내리는 강원도 어느 령쯤에 묶여 눈부신 고립 이런 시어를 찾고 싶다.

며 칠 전 문우와 통화중 강원도 검댕이 골로 여행 가자는 말이 반가웠다. 앞뒤 재지 않았다. 고립의 자유, 자유의 고립 우리는 늘 자유를 꿈꾸면서 어느 순간 고립의 두려움에서 가장 편안한 자유를 누리고 싶은 이중성의 모순을 범하며 살아간다.

고립과 자유가 한 덩어리로 엉켜있듯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남편은 산속에 살면서 또 산속으로 가느냐고한다. 왜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이 곤란하다. 모르겠다. 산속에 살면 도시가 그리울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난 도시에 들어가면 얼른 빠져 나오고 싶다.

나는 전생에 스님이었거나 산짐승이었거나. 글로써 말로써 내 생각을 다 표현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검댕이 골에서는 도시의 소음 그 흔한 차 소리도 없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집엔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밤이면 별이 쏟아져 지상이 별 밭이 될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특별히 뭐가 하고 싶어서 그 먼 길을 달려 온 것은 아니다. 특별히 할 일이 있지도 않다. 그저 허송세월을 한다. 하루는 밭둑을 따라 걸어보고 또 하루는 산길로 또 하루는 사람들이 사는 집 앞을 서성거리고 커피를 들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는 여유와 즐거움이 내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들이다.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불 멍, 산 멍하면서도 그냥 즐겁다.

계곡에는 버들가지가 피고 생강나무 꽃 몽우리가 금방 터질 것 같다. 지나간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내가 기다리는 돌아올 봄도 기대가된다. 타인에 의한 고립은 비참해서 슬플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고립에서 자유로운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따라 산책 하면서 난로에 불쏘시개로 쓸 하루치 삭정이를 들고 와 잘게 잘라놓고 기쁨에 겨워 초저녁잠을 청한다. 아직 폭설은 오지 않았는데 벌써 세 번째 검댕이 골 노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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