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과 불편이 없는 행복한 세상
억울함과 불편이 없는 행복한 세상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01.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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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이법전심 코너에 나가는 제 얼굴 사진은 10년이 넘은 사진입니다. 군을 전역하면서 이립(而立)을 기념하고 장차 취업활동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불혹(不惑)을 훌쩍 넘겼음에도 중간에 사진을 갱신하지 못한 게으름을 반성하고자 사진을 다시 찍고 수년간의 오래된 명함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작은 글씨의 군더더기들을 명함에서 빼고 새로 찍은 사진과 함께 `억울함과 불편이 없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문구를 새겼습니다.

주변의 변호사님들 명함과 비교할 때 특이한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새 명함이 낯도 간지럽습니다. 내 재능을 통해 어떻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라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자책하던 30대 초반을 기억하면 그래도 그때부터 10년이 넘도록 새길 명함은 만들게 되었다는 것에 내심 뿌듯합니다.

제가 마을변호사 활동을 야심차게 시작하려고 마음먹을 무렵 코로나사태로 활동이 한동안 흐지부지되다가 최근에 마을 이장님 연락을 받고 외가도 놀러 갈 겸 민원현장을 찾았습니다.

축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진입로를 위해 지적측량을 하는데 30년 전 마을 내부 도로포장이 잘못되어 인근 토지경계가 연이어 맞지 않게 되었다는 신고를 하였고, 애꿎게 대추농장을 하는 주민이 도로포장을 경계로 믿고 대추나무를 심었다가 도로가 포장되었어야 할 국유재산토지에 대추나무 몇 그루를 더 심게 되어 관청으로부터 원상회복명령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주민은 자식과도 같은 20년 넘은 대추나무를 뽑아버리게 생겼으니 억울하여 문제가 된 도로포장을 마을 길을 따라 추적하였는데, 역시 도로포장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자신의 밭을 다섯 평이 넘도록 갈라놓아 도로라는 이유로 국가가 주민의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관청이 주장하는 주민의 무단점유는 한 평 남짓인데 대추나무를 몇 그루 뽑아야 하고, 주민이 주장하는 국가의 무단점유는 다섯 평이 넘어 도로로 분리되어 쓸모없게 된 밭을 포기하여 왔으니 적반하장이 된 상황입니다.

마을변호사로서 의견서를 적어 보냈습니다.

주민의 의도하지 않은 한 평의 무단점유에 대한 원상회복명령은 적법할지라도 주민에 대하여 관청으로서 해야 하는 타당한 처분은 아니고, 다섯 평이 넘은 주민의 토지에 대한 국가의 무단점유가 있어 도리어 국가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구할 수 있으니 원상회복명령을 철회하는 것을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관청은 변호사의견서에 답도 없이 2차 원상회복명령을 통지하였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충분히 검토해서 조치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주민을 위하지 않는 이론적인 행정행위 또는 소극행정의 피해자는 힘없는 주민의 몫일 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수없이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억울함과 불편이 없는 행복한 세상이 가능할까요.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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