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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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1.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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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겨울비.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작년에 비해 꽤나 추운 겨울인데, 요 며칠 누그러진 날씨가 한껏 포근하더니 비가 내린 것이다. 비는 꽁꽁 얼어붙었던 음지 길을 거짓말처럼 말끔히 녹여버렸다.

농장의 비탈길이 녹았으니 이때다 싶어 동물들의 사료를 트렁크와 뒷자리에 잔뜩 실어다 컨테이너에 재웠다. 겨울 날씨가 언제 또 눈이 쌓이고 얼어붙을지 모르니 뒤늦게 깨달은 일이지만 미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두고자 함이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 빈둥거리다가 정리나 해볼까 하고 장롱을 열었다. 뒤쪽 깊숙한 곳에 활 가방이 보인다. 귀중품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꺼냈다. 가방 속에는 몸통, 두 날개, 조준기, 현 등 본체가 가방에 차곡차곡 잘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화살이며 화살통, 팔 보호대, 손가락 보호 텝들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나하나 꺼내어 물걸레로 닦아낸 다음 콜드크림을 바르니 손때 묻은 오래된 활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게 꼭 새것 같다. 활을 쥐어 본지가 얼마 만인가.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산 지도 어언 반세기 50여 년이나 되었다.

그해는 밤이 풍년이었다. 다른 과실과 달리 외피에 온통 가시가 돋아있는 밤 수확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물론 알밤이 되어 떨어진 뒤에 주우면 가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으나 우리는 밤송이채로 수확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커다란 쇠가죽 장갑을 끼거나 집게를 사용해 줍는데 쇠가죽 장갑을 낀 이는 몇 안 되고 대개 솜을 두텁게 넣어 만든 장갑이었다. 말이 장갑이고 집게지 번번이 뾰쪽뾰쪽하고 억센 가시에 찔리곤 했다.

우리 집 뒷마당은 정말 넓었다. 그 넓은 마당에 밤이 가득 산처럼 쌓인다. 흙으로 밤송이를 덮어야겠지만 산더미 같이 쌓인 밤 무덤을 덮을 만큼의 흙이 없었으므로 담배 묘판을 덮는 꺼치 거적과 멍석으로 대신했다. 며칠을 물을 뿌리며 묵혀두면 가시가 붙은 표피부분이 사그라지며 삭기 시작하고 장화발로 문지르면 쉽게 알밤으로 까인다. 이렇게 생산된 밤은 가마니에 넣어 마차로 읍내는 물론 청주 충주로 실려 나갔다.

그때만큼 밤 농사로 수익을 많이 낸 적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셨고 어느 날 자축이라도 하시는 듯 식구들을 모아 놓고, 각자 자기가 가장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하셨다. 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큰형은 스케이트를 사달라 했고 동생은 운동화를 막내는 자전거를 희망했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행글라이더였고 또 하나는 양궁이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때만큼 고민이 깊었던 적도 드문 것 같다. 행글라이더는 헝겊을 씌운 삼각형의 날개를 몸체에 붙인 글라이더로, 사람이 몸체에 매달려 언덕이나 비탈면에서 활주하여 하늘을 비상하는 기구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인기스포츠였다. 행글라이딩은 보통 하늘을 누가 오래 날았고, 누가 목표 지점에 정확히 착륙하였는가가 중요한 종목이다.

곰곰 며칠을 두고 고민하다 양궁 쪽으로 기울었다. 솔직히 높은 산까지 장비를 옮기는 등 이동 수단이 쉽지 않다는 점과 함께 할 동호인들이 다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반면 양궁은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국궁을 곁에서 보아온 터라 친근감이 있었고, 언제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가격은 행글라이더나 양궁 모두 쌀 1가마니 값이었으니 당시 내 나이에 감히 엄두도 못 낼 큰돈이었다.

그때 구입한 활, 양궁이다. 외국어 표기는 리커브 보우라고 한다. 활을 꺼내 든 마음이 마치 오래전부터 장롱 깊숙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귀금속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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