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명령만 새기고 가라
국민의 명령만 새기고 가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1.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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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사건들을 전담할 기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해 판·검사, 장관급 장교, 경무관급 이상 경찰관, 3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중심에 포진된 인물들이다. 정치적 사건을 맡아 비정치적으로 수사하고 처결하는 곳이 공수처라 할 수 있다. 중립성을 굳게 지향한다 해도 정치적 논란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관이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를 보더라도 내편이 대상이 되면 야당은 “권력의 충견이 야당을 탄압한다”고 하고, 여당은 “적폐 세력이 개혁에 저항한다”며 반발하곤 했다. 공수처도 이런 내로남불 식 공세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다.

야당은 공수처 설치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처장 후보 추천도 보이콧하다시피 했다. 그런 야당이 비록 부적격 의견을 달기는 했지만,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김 처장이 청문회 과정에서 사실상 야당의 추인을 받을 정도로 믿음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김 처장은 청문회에서 법무부의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질문받고는 “피고인이 누구든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공수처의 생명줄”이라고도 말했다. 청와대나 권력의 압력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묻자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의연하게 대처하겠다”고 답했다. 원론적인 대답들이지만 일단 야당의 색안경을 벗기는 데는 성공했다.

공수처가 공식 출범하며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이 첫 수사 대상은 누가 될 것이냐는 문제이다. 공수처의 첫 수사가 갖는 의미는 적지않다. 공수처의 위상과 목표, 방향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건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공수처에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면서 첫 사건부터 정치적 고려를 주문하는 듯한 분위기다. 따지고 보면 공수처장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냐”고 묻는 자체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흔드는 짓이다.

그래서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은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냐는 관점으로 지켜봐야 한다. 행위자가 누구든 국민 누구나 공감할 중대한 혐의와 그 혐의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어느 쪽에서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사건으로 공수처의 출발을 알려야 한다. 역사에 남을 오명을 어느 진영의 누가 쓸 것이냐는 세속적 관심만으로 공수처의 첫 수사를 재단하면 쓸데없는 논란만 초래할 뿐이다. 공수처는 권력과 돈으로 법의 심판을 피해가는 유권무죄(有權無罪), 유전무죄(有錢無罪)의 폐습을 뿌리뽑아달라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산실로 삼아 탄생했다. 그 염원에 호응하는 데 정치적 고려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처장이 취임했지만 공수처가 실제 업무를 시작하려면 최소 두 달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차장을 임명하고 인사위를 꾸려 검사 23명과 수사관 40명을 뽑아야 한다. 김 처장은 수사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능력이 뛰어난 차장과 수사인력을 인선함으로써 이런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김 처장은 청문회장에서 공수처를 외풍으로부터 막을 든든한 방패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웬만한 강단과 소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을 내공을 쌓는 일도 중요하다. 첫 과제로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건을 택할 것이라는 둥의 한가로운 훈수에 혹해서도 안 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야말로 공수처가 당찬 각오로 넘어야 할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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