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을 위한 착취적 리더십
적과의 동침을 위한 착취적 리더십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1.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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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농장으로 가는 길은 쇠응달이다. 한번 눈이 내라면 봄까지 녹지 않는 길이다. 종일토록 햇볕 한번 쬐지 않는 언덕길을 오르내린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 길을 하루에 두 번 가야 한다. 아침에 커피포트에 끓여 뜨거운 물로 얼어붙은 물통을 녹여주고 닭 모이를 준다. 오리와 기러기는 닭과 달리 물을 많이도 먹는다. 사료는 자동 급식기라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물은 영하의 날씨라서 꽁꽁 얼어버리므로 매일 녹여주어야만 한다.

사료가 떨어지면 1킬로미터 거리의 눈길을 등짐으로 지고 올라가야 한다. 평소에는 문을 개방해 놓는다. 그러면 산과 들판을 쏘다니며 나락과 풀씨들을 주워 먹는다, 하지만 요즘은 눈 덮인 산하에서 나락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AI 조류독감이 번진다는 소문에 꼭꼭 잠가두는 관계로 사룟값이 배로 든다. 그래도 하루에 한 개씩 꼭꼭 알을 낳아주는 닭, 오리들이니 여간 신통치가 않다. 다만 강추위에 달걀이 얼어버리므로 낳기를 기다렸다가 곧바로 수거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겨울엔 야생의 흔적이 뚜렷하다.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족제비 들고양이 등 야생발자국들이 수없이 많이 찍혀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봄, 여름, 가을철엔 보이지 않던 솔개들이 대여섯 마리씩 하늘을 맴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살아남은 닭, 오리, 기러기. 토끼들을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살아남는 비결이 있는 듯하다. 우리 안에는 암컷들보다 수컷들이 많다. 보초를 서는지 수컷들은 교대로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이상 징후가 보이면 소리를 지르며 비상 신호를 보내면 순식간에 높은 횃대로 날아오르고 오리와 기러기는 문짝 뒤로 숨고 토끼들은 굴로 들어간다. 한동안 우리 안은 숨죽은 듯 조용하다가 1~2시간이 지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곤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오며 터득한 그들만의 기발한 노하우이라라.

다수를 위해 경계를 서는 것은 군대에서 통하는 이야기지마는 동물 중엔 몽구스가 대표적이다. 한 녀석이 경계를 서는 동안 안심하고 먹이활동을 하고 새끼들은 장난을 치며 자유롭게 논다. 그러다 적이 나타나면 비상 신호를 보내 일제히 대피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몽구스들은 이웃들과 자주 분쟁을 일으킨다.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부르는 폭력사태를 일으킨다는 실증적 사례가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몽구스에서 밝혀졌다. 몽구스는 몸길이 30~40㎝의 작은 동물이지만 사자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집단의 힘 덕분이다. 큰 물고기에 맞서기 위해 작은 물고기들이 더 큰 물고기 형태로 뭉치듯이 몽구스는 무리 전체가 하나로 뭉쳐 마치 한 마리의 동물처럼 행동해 경쟁 집단이나 포식자와 맞선다.

이렇게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몽구스 사회이지만 암컷이 경쟁 집단의 수컷과 짝짓기 하기 위해 싸움을 촉발하는 `착취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뜻밖의 사실이다.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부르는 폭력사태를 일으킨다는 실증적 사례다. 이를테면 암컷 몽구스는 `적과의 동침'위해 전쟁을 벌인다고나 할까. 싸움하느라 수컷이 감시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 짝짓기를 한다고 한다. 분쟁을 일으키고 책임을 지지 않는 착취적 리더십이다

몽구스는 집단 간 싸움이 잦고 희생 또한 큰데 그 원인의 하나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암컷의 부추김이라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웃 경쟁 집단과 잦은 충돌과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이 발생하기로 유명하다. 그 이유를 알려면 포유류가 사는 법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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