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1.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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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예전에는 발소리만 들어도 후두둑 날아오르거나 저만치 자리를 옮기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녀도 꿈쩍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이 신기해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는 중이다. 내심, 무얼 잡을 수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발로였을 테다. 한참을 바닥을 부리로 되작이던 녀석이 드디어 꽤 큼직한 피라미 한 마리를 잡아내었다. 피라미는 청둥오리의 부리에서 빠져나가 보려 필사적으로 몸뚱이를 흔들어 보지만 청둥오리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삼켜버리고 만다.

강추위에 읍내의 중심을 흐르는 천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 길을 산책한다. 나도 좀 덜 추운 날은 짧은 패딩을 입고, 많이 추운 날은 긴 패딩에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채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다. 모임도 여행도 못한지 오래다. 이렇게라도 바람을 쐬니 갑갑했던 마음이 달래지는 느낌이다.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이 꽤나 눈에 띈다. 물론 몇몇은 두세 명씩 걷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식해서 인지 마스크를 벗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별로 없다.

임계거리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말한다. 직장에서도 이러한 임계거리는 꼭 필요하다. 현명한 리더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부하직원들을 대할 때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되 친밀감과 유대감은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심하거나 방관하지도 않는 마음 그것이 직장에서 최고의 상사가 가지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이러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원칙'은 여타의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하다. 가까운 친구 사이일수록 이러한 임계거리는 꼭 지켜야 한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처를 주는 말이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게 되고 결국은 멀어지고 만다.

우리 사람뿐 아니라 야생의 세계에서도 임계거리는 존재한다. 그런데 야생의 동물들에게 임계거리를 다른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바로 도주거리(Flight Distan ce)와 싸움거리(Fight Distance)다.

포식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거리를 도주 거리(Flight Distance)라고 하며, 반대로 일정거리를 무시하고 좁혀오며 공격을 하는 것을 싸움거리(Fight Distance)라고 한다. 그래서 맹수를 다루는 조련사들에게 이러한 적정한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동물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조련사를 무시하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면 동물들이 위협을 느껴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련사의 말을 잘 들으면서도 동물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 거리를 동물행동학에서는 `임계거리(Critical Distance)라고 한다. 그렇다면 소통을 한다는 말이나, 배려를 한다는 말은 `임계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다른 표현은 아닐까.

어쩌면 유유자적 얼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속을 되작이는 겨울 철새는 우리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위에 움츠린 채 앞만 보며 걷는 사람들을 보며 겨울 철새는 안전한 도주거리(Flight Distance)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갑자기 암컷 청둥오리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덩달아 옆에 있던 새들도 합세했다.

“꽤깨깨깩, 깨깨깩”

지나던 사람들이 일순간 멈춰 그 녀석들을 향해 섰다.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비웃다 못해 이제는 저렇게 호통을 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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