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놀아주기
나와 놀아주기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01.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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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참 오랜만이다. 또 다른 나와 만나고 미뤄두었던 시간을 공유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렇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온 세상에 감도는 긴장의 기운은 자꾸만 퍼져가고 있는 터, 일 년이란 세월을 훌쩍 보낸 후에야 눈이 뜨였다고나 할까. 듣기만 해도 두려운 코로나라는 이름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도록 했던 것이다.

뉴스에서 눈과 귀를 뗄 수가 없다. 창밖은 여전히 찬바람으로 가득한 세상이고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온통 잿빛으로 내려앉은 풍경 같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그 사이에는 수많은 벽들이 생기고야 말았다. 어쩌랴, 그저 살아있음에 안심이고 살아야 하기에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이른 현실이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외출을 하거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나만의 성에서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저절로 이르게 된 것이다.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자구책으로 피할 수 없으면 감당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건만 더도 덜도 아닌 내 주제만큼 활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뜨게 실을 꺼내 들었다. 무엇엔가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간신히 기초에 머물러 있던 터, 일단 모자를 뜨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거기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엉성한 솜씨에 제대로 모양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모자를 두 개나 완성시켰다. 여름모자와 겨울모자, 모두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이다.

자랑삼아 가족들에게 보였지만 별 반응은 없다. 그만큼 서툰 솜씨라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딴에는 흡족하기 그만이다. 혼자 있을 때면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모양을 살피느라 여념 없는 내가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떠오른 것은 이 순간이 온전하게 나와 놀아주는 여유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밖의 세상은 무거운 기운뿐이지만 담장 속의 나는 이렇게 나름대로 숨 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참 여유로웠다. 작은 손놀림의 연속이었지만 귀는 열려 있었고 가슴속에는 무한한 바다가 넘실대는 기분이었다. 혼자가 아닌 내 안의 나와 얘기하며 과거를 거스르기도 했고 미래에 다다르기도 했다. 눈을 들면 현실은 불안한 소식들로 가득할지언정 예측할 수 없었던 나와의 만남이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나와 마주 보며 놀아주기가 얼마 만이던가. 갈증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쌓여 있던 삶의 진부한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는 지금도 우울한 공기의 소식들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곧 헤어나리라 믿는다. 모자 두 개가 드러날 만큼의 수확은 아니어도 내게는 생각의 우물을 깊게 파 놓은 모양처럼 진지한 시간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다음은 또 어떤 놀이로 나에게 즐거움을 더 해 줄 것인지 찾으려 한다. 그동안 내 눈길을 기다리던 책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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