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소민병원'을 찾아서
청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소민병원'을 찾아서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1.11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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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나라 역사의 전반을 알게 하는 국가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나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역사는 지역사다. 때문에 국가사 만큼 지역사도 중요하고 역사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시대적으로도 고대사나 중세사 등 먼 옛날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근현대사가 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근현대사를 학습함으로써 학생 스스로가 역사적 행위 주체로 자각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역사교육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면에서 청주 `양관'은 청주와 충청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역사교육의 장이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1~5호 양관에 이어 소개할 양관은 제6호 양관인 소민병원(던컨기념관 J.P.Duncan)(충북도유형문화재 제133-6호)이다. 일신여고 정문을 들어서면 언덕 위에 빨간색 벽돌로 된 예쁜 서양식 건물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옛 소민병원 건물이다.

1900년대 청주 선교부가 설립되고 선교사 가족이 늘어나면서 병원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문에 민노아 목사는 선교본부에 승인을 얻어 병원설립에 힘을 기울이며 다른 선교부와 같이 의료선교에 착수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미국의 던컨 부인이 병원 건축을 위해 1908년에 1차로 5000달러를 헌금했고, 1910년 4월에 기초를 시작해 1911년 1월에 우선 진료실을 건축하고, 이어 1912년 7월에 병원 건물을 완공했다.

병원 건물이 세워진 후 던컨 부인은 병원 내부의 의료시설을 위해 2000달러를 추가로 헌금해 기와지붕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붉은 벽돌집이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진료실과 수술실이 갖추어져 있었고, 1905년 밀러가 지은 기와집 2채는 입원실로 쓰였다. 이로써 병상 20개를 갖춘 청주 최초의 근대적 병원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 병원이 선교사들 사이에는 던컨기념병원(Duncan Memorial Hospital)으로 불렸고, 한국인들에게는 소민병원(蘇民病院)으로 불리게 되면서 주로 생활이 어려운 청주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이 주어졌다.

소민병원이 언덕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병원에 오기가 힘들어해 별도의 진료소를 만들었는데, 1917년 남석교 근처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 옆에 마련해 지역 주민을 진료했고 소민병원은 입원실로 사용됐다.

양관은 단순히 서양식 건축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삶의 터전이자 충북 선교의 본거지였으며,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가 시작된 역사적 현장이다. 탑동은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지금도 고려시대 5층 석탑이 보존되고 있어 주변에 사찰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청주교도소(현재 석탑아파트와 은광교회 자리)가 탑동 1번지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청주 선교부가 설립될 당시는 이곳이 청주읍성 동쪽의 동산이었고, 지금 동산교회도 세워져 있다.

당시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고국에서 당당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과정을 이수하고 석사 박사의 학위를 소유한 엘리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엘리트들이 지구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나라로, 그것도 악랄한 일본제국주의 치하에 있는 후진국인 우리나라에 왔을까?

그것은 인류를 사랑하고 우리나라 백성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선교사로 생명을 걸고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존경의 마음에 저절로 옷깃이 여미어진다.

이제 그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남겨진 우리는 사랑에 빚진 자들이다.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누고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진 빚을 갚는 작은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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