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을 기록하다
무형을 기록하다
  •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승인 2021.01.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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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지역 전통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와 다르게 전승주체인 기능보유자의 노령화로 인해 늘 전승단절의 위험성이 있다. 유형문화재는 사진·영상 촬영, 측량, 해체·보수, 수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지만, 무형문화재는 기능보유자를 현상 그대로 복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급속히 변화하는 경제사회는 전통문화를 업으로 살아가는 기능보유자들의 전승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 이상 전수자를 통한 무형의 자산이 전달되는 것만으론 무형문화재를 온전히 기록하고 보전할 수 없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무형문화재 또한 기능보유자가 가진 전통 그대로의 것들을 세세히 기록하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기록의 방법은 두 가지 방식이 함께 진행된다. 전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영상 작업과 함께 영상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지 못하는 전승 주체의 생애와 전승계보,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의 내용을 담은 도서 제작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과정에 해당 종목의 전문가가 참여해 이루어지는 이런 작업을 무형문화재 기록화라고 한다.

2020년은 2012년 이후 멈춰져 있었던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기록화가 재개된 해로, 충북에 지정된 27건의 무형문화재 중 기존에 기록화를 끝마친 9건과 보유자가 없는 종목을 제외한 17건에 대한 기록화가 매년 2건씩 진행될 예정이다. 2020년도에는 충북무형문화재 제16호 궁시장과 제18호 자석벼루장에 대한 기록화를 끝맺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쌓아온 지식과 기능을 기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보이는 대로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널리 알려진 우리 전통문화의 본 모습과 비교하고 대조해보면서 이 사람만의 특색은 무엇인지, 혹시 우리 지역만이 가지는 특징이 나오지는 않을까,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리 쌓아놓았던 신뢰감과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은 장인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보여주기 꺼려하는 순간에도 가감 없이 감추었던 무기를 풀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궁시장 양태현과 자석벼루장 신명식은 한 분야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장인이라고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화의 물결과는 정반대로 단지 업으로, 삶으로 고집스럽게 전통문화를 살아낸 사람들이다. 기능보유자들이 전통 기술을 습득할 당시에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수호한다는 개념보다 생계 수단을 위한 절실함이 컸다. 굴곡 없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장인들은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사람들의 외면과 전통업의 사양길 등 무수한 어려움을 감내하며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그렇게 장인들을 외면했던 시선은 어쩌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외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 명주짜기의 과정을 별다른 설명 없이 장면과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ASMR 영상이 1년이 안 된 시간에 조회수 245만회를 기록했다.(2020년 1월 23일 개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지쳐갈 때쯤, 조금은 생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리 내면에서 느껴지는 익숙함과 정겨움, 이것이 바로 전통문화가 주는 힘인 거 같다.

충북 무형문화재 기록화도 그렇게 다가가고자 한다. 무형문화재를 단순히 Ctrl C해서 Ctrl V하는 작업이 아닌 지역 전통문화의 연원과 특징, 기예능 그대로의 보존, 전승주체의 삶까지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이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전통문화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 지쳐갈 때쯤 장인의 삶이 녹아진 망치질 한 번, 칼질 한 번을 볼 때 우리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전통의 힘이 위로의 말을 건네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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