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구, 다생가구
5인 가구, 다생가구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1.0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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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고집 센 철판 표면의 서릿발이 가실 즈음 마당으로 나간다. 급한 마음에 나왔지만, 몸이 움츠러든다. 지난해 태어나 제법 자란 고양이도 추웠는지 총총 잰걸음을 눈 쌓인 디딤석에 남겼다.

덩달아 나도 잰걸음이다. 잰걸음의 발자국을 곁에 남기고 찬바람을 피해 연장을 놓아두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작업(?)은 새해가 되면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 토마호크를 맛나게 굽는 거다. 아침에 떡만둣국을 먹고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숯을 피우는 통에 넉넉하게 숯을 채우고 불을 지핀다. 그리고 바비큐그릴에 피운 숯을 넣고, 반은 석쇠에 반은 훈연 고리에 이베리코 토마호크를 걸었다. 온도는 160도로 유지, 1시간여 정도의 작업시간(?)을 예상한다.

그사이 아이들은 실내청소다. 환기를 하고 각자 휴지통을 가지고 역시 잰걸음이다. 20여개의 계단을 내려와 36여개의 잔디밭에 놓인 디딤석을 지나 텃밭 사이로 놓인 48개의 커다란 사각돌판을 디디고서야 분리수거하는 곳으로 향한다.

지나가면서 비닐하우스 안의 고양이를 찾아 눈인사하고, 고양이 발자국을 촬영하고, 가족 수만큼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둘째. 아버지가 뭐하나 곁에 와 연신 말을 걸고, 그릴의 고기를 휴대폰에 담는 막내와 첫째.

가끔 바비큐그릴 뚜껑을 열어 뒤집어 주고, 고리 위치를 위아래로 바꿔 걸어주는 사이, 나잇살 먹은 담과 무쇠 굴뚝이 무심하게 들어온다. 여름내 담쟁이와 인동초에 둘러싸였던 것이 겨울이 되니 드러난다.

아버지가 솥을 걸고 화덕을 만들면서 만든 굴뚝과 가슴높이로 쌓은 시멘트 담. 매년 아버지와 청소하던 우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시간의 공간.

아버지는 참 많은 것을 했다. 가끔 부는 칼바람에 가까운 바람 속에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리고 둘째가 밖에서 고생하는 아빠를 위해 피아노를 친다. `앙드레 가뇽'의 `처음처럼'이 마당까지 흘러나온다. 반복되는 구간이 많아 치는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아빠와 엄마가 좋아할 듯해 들려주는 둘째의 마음이다. 칼같이 불던 바람은 주춤해 졌고, 이내 포근해졌다.

그릴 안에서 기름이 떨어지고 달궈진 기름받이에 치~익 소리를 내는 동안, 집안에서는 온종일 재잘재잘, 웃음소리가 반복이다.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지 않은 터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내내 대화가 이어졌다. 문이 없기에 공간의 구분이 없다.

모든 공간이 거실이 되고 서재가 되고 침실이 된다.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지고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에 자유롭게 눈 맞춤을 하는 공간이고, 그러하기에 서로의 눈빛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이야기의 주제가 다르다. 끊어질 듯하다 연결되어 이어지며, 가끔 “삐졌어?”, “하하”. 큰 웃음소리에 분위기가 등락을 탄다.

가로등 불빛이 연달아 켜지며, 그릴의 뚜껑이 열렸다. 아직 덜 떨어진 기름이 있는지 마지막 한 두어 방울 떨구고, 열 조각의 토마호크가 접시에 담겨, 4M 길이의 잘 차려진 원목테이블 위, 빈자리에 놓였다. 반찬은 작년에 채취한 나물과 마늘, 초석잠으로 담근 장아찌, 그리고 레드와인과 크리스탈 와인잔 5개, 막내가 올해부터 성인이 된 날이기에 술잔이 하나 더 늘었다.

1월 1일, 막내가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는 날 저녁은 테이블와인 잔을 부딪치며 가족의 시간을 즐기며 채운다.

고생한 아빠에게 고기를 떼어주고, 음식을 마련한 엄마에게 연신 최고의 맛이라 감탄해 주는 가족들의 감사. 이제 시작하는 막내의 대학생활, 취업을 준비하는 둘째, 1년 조교생활을 마감하고 대학원을 진학하는 첫째의 올 한해의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으로 공간을 채운다. 공간의 구분과 경계가 없기에 모든 것들이 귀를 쫑긋 세워 듣고 공감해준다. 유일하게 문이 있는 공간, 욕실에 있는 작년 말 기르기 시작한 톱밥배지의 것이 서운했는지, 나도 듣고 있다 표고버섯이 짙은 갈색 가죽모자를 눌러쓰고 엄지척하며 삐죽삐죽 사방에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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