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구경 복기(復碁)
싸움 구경 복기(復碁)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12.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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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싸움 구경했으면 관전평이나 복기가 없을 수 없다. 검찰의 대장과 법무부 수장의 싸움이 끝났다. 싸움은 검찰총장의 완승. 추다르크가 아니라 추키호테가 되어가는 것 같다. 대통령도 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발 빠른 사과다.

무딘 칼로 질긴 힘줄을 끊으려니 끊길 리 만무다. 검찰, 법무부, 법원, 다 법을 다루는 조직이다. 검찰? 법에 관한 한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집단이다. 법무부? 그런 집단의 상급 기관으로 법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들이 행정을 하는 곳이다. 법원? 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연수원 성적 가장 좋은 사람들 가는 곳이다. 이 사안을 놓고 절차상 하자가 있느니 없느니 싸우는 걸 보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고의 법 전문가들이 이런 걸 놓고 싸운다고? 이해가 안 간다. 결론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걸로 났다. 하자가 있는 걸 몰랐나? 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그런 칼을 쓰면 안 됐다.

영화 `더킹'을 보면 검찰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온갖 비리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필요에 따라서 하나씩 터뜨려서 자기 조직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간다. 조국 사건도 그랬고 이번 법무부 장관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법무부 장관만 되면, 장관이 검찰개혁이라는 기치를 들면 어떻게 그렇게 비리가 많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것 같기는 하다. 검찰조직이 그래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조직이 검찰이라는 걸 위정자들이 몰랐을까? 법무부 장관은 몰랐을까?

원래 검찰은 이제까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관심을 기울였지,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결재한 징계 안을 면전에서 거부한 건 이제까지의 검찰과 다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검찰총장과 정부가 붙으면 항상 검찰총장이 쫓겨났다. 법무부 장관에게 항명한 검찰총장은 사표를 던졌다. 이번에는 끝까지 버텼다. 그래서 이겼다. 상식과 법치가 통하는 판결에 고마워하면서 직에 복귀했다.

사실 밖으로 드러난 대장 하나를 자른다고 검찰조직이 달라질까? 과거의 사례를 통해 보면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를 제대로 채운 검찰총장이 얼마나 될까? 21명 중 8명이란다. 최근 10년 동안은 2명이란다. 이들은 대체로 검찰조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검찰의 수장을 자주 잘랐다. 검찰은 히드라 같은 조직이다. 머리를 잘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머리를 새로 만들어서 내세운다. 조폭 조직은 두목을 잡아넣고 중간보스 몇 명 치면 와해된다. 이런 조직을 소탕하는 국가 조직인 검찰은 머리를 잘라도 죽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또 자르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나 같아도 대장이 그런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한 조직의 풍토를 근본부터 바꾸려 할 것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면 검찰총장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 수 있으면 된다. 조직이 달라지면 대장은 누가 되든 별 상관없으니까. 이렇게 되면 못 자른 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잘랐으면 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르지 못하니 조직 전체를 바꾸려고 하겠지.

이 싸움이 격렬할수록 뒷전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야당이다. 검찰의 수장 혼자 정부하고 맞붙어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은 거드는 조연 역할을 할 뿐이다. 존재감이 별로 없다. 임기 채우고 난 검찰총장은 정계로? 그건 죽어도 안 된다. 이전 정권 때도 지금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대통령 자르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야당이 지금의 검찰총장을 내칠 수 있을까? 그런 스타를? 쉽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는 이겼는데 열매 따 먹는 사람이 없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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