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29 1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서기 2020년은 너나없이 그저 `저문다'라는 말로 마무리할 수 없는 두려움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 그 어느 때보다 스산한 겨울 한복판에서 2020년 마지막 <수요단상>을 쓴다. 그리고 세월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 대신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더 간절한 희망을 담는다.

잘 견디고, 잘 버텨왔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격리와 차단, 각별한 몸조심이 어쩔 수 없는 감염병의 시대.

일 년을 꼬박 휩쓸리고도 아직 우리는 코로나19의 지독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세상을 덮치고, 그로 인해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가야 했던 나날들은 단 한 순간도 고통이 아닌 적이 없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확진자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단 하루도 두려움이 아닌 날이 없던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길 바랐다. 그리하여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격리를 위한 집단 수용을 거부했으며, 병든 이들을 비난하는 차별과 혐오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선량한 사람들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고국을 찾아온 동포들을 맞아주었으며, 사람들은 극성의 감염병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더불어 함께 살아남는 길을 찾아내는 슬기를 깨우치기도 했다.

`내가 걸릴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것이 더 염려되는'공동의 선으로 살아남는 법을 알았다.

사람들은 드디어 멀리 떨어지는 육체로 인해 마음이 더 가깝게 더 크게 열리는 세상을 기적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마스크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맨 얼굴로도 공연히 엄숙했거나 표정없음으로 관심을 멀리 했던 사람들은 이제 눈만 겨우 남기고 온통 가려진 상태에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음을 깨닫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도 밝고 맑은 눈빛으로 서로를 더 격려하면서 함께 위로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다.

거기 남은 눈빛에는 맨 얼굴일 때보다 더 커다란 믿음과, 그 믿음에서 솟아나는 용기의 나눔으로 모두가 함께 견디는 힘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메이 엮음. <세벽 세시의 몸들에게>에서 인용)처럼 타인에 대한 세심하고 정성어린 관찰.

미국의 인류학자 자넬 테일러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겪으며 깨달은 통찰은 비록 마스크가 우리 몸과 일체화되며 쓰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는 길과 맞닿아 있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물러나지 않고 있는 까닭이 절제되지 못하는 자본적 탐욕과 자연을 함부로 침범하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세밑에 새삼 강조하지 않겠다.

다만 그동안의 인간이 자연에 퍼부었던 약탈과 파괴, 그리고 인공(人工)으로 세상을 뒤덮을 성장 일변의 건설에 대한 자성과 성찰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코로나19가 제시한 마지막 경고의 시간일 수 있다.

백신이 코로나19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추앙되는 사이, 가난하고 병약하며 외로운 죽음을 외면하는 차별은 아닌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장 14절>는 말씀처럼 알 수 없는 한 해를 보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을 꿈꾸는 시간.

모두가 격리 없이 멀리 살아야 하는 우리. 추위만큼 깊어지는 생각들로 해가 저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