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12.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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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남편은 결혼하면서 아침을 준비하기로 했다. 자신이 늘 먹는 것처럼 토마토, 우유, 빵 이 세 가지로 한결같이 차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은 칼질을 못해 꺼낼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과일을 못 깎는 사람이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남편이 아이를 보겠다며 1년간 쉬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남편은 너무 지쳐 있었다. 식탁에는 정체 모를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볶음인지, 찜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매일 이어졌다. 저녁을 해야만 하는 오후 3시부터 남편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정체 모를 음식이었지만 나름 혼신의 노력을 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 1년을 보낸 후 남편은 칼질과 요리에 자신감이 생겼다. 사과를 숭덩숭덩 자르긴 하지만 과일을 깎을 수 있으며, 몇 가지 국을 끓여낼 수도 있다. 내가 없어도 우리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됐다.

도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강창래 저·루페·2018)'는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이었던 남편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소문난 인문학자다. 인문학을 알아야 삶이 보이고 다양한 학문이 얽히고설켜 있음을 저자의 책과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속내가 이리 아픈 사연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아내가 암에 걸렸다. 달걀, 라면 밖에 할 줄 몰랐던 저자는 아내를 먹이기 위해 좋은 재료를 사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 레시피를 담아 놓은 것이 이 책이다. 떠나는 날을 하루라도 미루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더해진 요리의 이야기에 자꾸 눈물이 스민다. 나는 요리를 저렇게 정성스레 한 적이 있었던가? 재료 자체의 맛을 내기 위해 조심스레 다듬고, 양념을 적게 쓰는 저자의 일련의 행동이 수행하는 사람과 같다.

이 책을 완성하는 동안 저자의 아내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저자는 이제 부엌에서 먹거리를 만드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다. 이러라고 아내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었던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슬프지만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말이다. 저자는 이제 한 끼도 소홀히 먹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SNS는 그 이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자신을 위한 레시피를 곧잘 올린다. 아내도 그 모습을 흐뭇해하지 않을까?

요리에는 여러 가지 마음이 담긴다. 그래서 집 밥이란 말이 생겨났고, 엄마의 손맛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의 손맛은 무엇일까? 나는 무슨 마음을 담아 가족들과 함께하는 걸까? 괜히 내가 만든 음식에 미안해진다.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며 요리에 점점 소홀히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우선 이 책을 읽혀야겠다. 우리가 먹는 삼시세끼를 조금 더 의미 있고 충실하게 수행하자고 말이다. 온 마음을 담아서 이 마음이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서 말이다. 저자의 은은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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