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논쟁 종식할 때
윤석열 논쟁 종식할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2.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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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교수들이 대한민국의 2020년을 응축한 사자성어로 이같은 신조어를 꼽았다. 성어 하나를 더 보태면 완결된다. 불문곡직(不問曲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조건 내편이 옳고 상대편은 틀려먹었다. 올 한해 우리 사회 곳곳이 겪은 갈등과 충돌의 특질을 간파한 이 촌평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교수들 투표에서 두번째로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낯이 두꺼워야 아시타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교수들이 선택은 달리 했지만 시절을 바라본 심정은 같았을 것이다.

최근 법원의 잇단 판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야의 설전을 보노라면 교수들의 이 일침이 새삼스러워진다. 특히 여권에서 법원에 쏟아내는 거친 언사들은 `아시타비'를 넘어 유아독존(唯我獨尊)의 단계로 치닫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민주당 의원들은 법원과 검찰을 카르텔이자 이익공동체로 몰아붙였다. `특권 집단의 동맹으로서 형사·사법 권력을 고수하려는 법조카르텔의 강고한 저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통치권을 정지시킨 사법쿠데타', `사법과 검찰의 과잉 정치화로 훼손된 민주주의' 등 반발이 주종을 이뤘을 뿐 이런 결과가 왜 나왔는지를 돌아보자는 성찰의 목소리는 전무했다. 윤 총장 탄핵까지 주장하고 나선 의원도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법원이 야속할 정도로 충격이 클 것이다. 법원의 판단에 의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가 제동이 걸린데 이어 징계 조차도 무산됐으니 말이다. 무리한 징계를 밀어붙였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고 검찰개혁의 기치가 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대통령이 재가까지 한 징계가 법원에서 뒤집혔으니 청와대에 낯을 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무려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도 여권에는 법원 발 대참사였다.

그렇더라도 판사의 신상을 털거나 법원과 법치를 부정하는 발언들로 화를 푸는 것은 국정을 주도하는 거대 집권당 답지않은 태도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마구 내뱉는 것도 경박하다. 그 감정적인 말들에 판사들이 주눅들 것 같지도 않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검찰총장 징계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김두관 의원의 발언과 더불어 오해를 살 만하다. 3권분립은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말자는 담합의 산물이 아니라 권력 간 상호 견제와 감시로 민주주의를 유지하자는 합의의 결과물이다.

국가 지도자의 권력은 왕조시대에도 무한적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홍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이른바 3사(司)의 견제에서 자유로웠던 국왕은 폭군 연산군 밖에 없었다. 공식 통치행위는 물론 가정사 조차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이혼과 재혼을 하기위해 신하들과 지리하게 싸워야 했고 사냥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치른 선조는 자신의 피란 조차도 뜻대로 하지 못했다. 왜군이 부산을 도륙하고 북상한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한양을 뜨지 못해 안달을 냈지만 백성의 동요와 군대의 사기저하를 우려한 신하들의 반대에 번번이 굴복했다. 그래도 연산군 처럼 3사를 폐지한 국왕은 없었다.

이번 법원 판결은 검찰총장을 둘러싼 정치논쟁을 종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권이 검찰과 법원이 개입된 일련의 과정에 대한 판단을 국민에게 맡기고 정책과 제도에 집중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출범을 앞둔 공수처의 중립화와 내실화, 수사권이 크게 확충되는 경찰 조직의 보완 등 실무적인 검찰개혁 절차들도 쌓여있지 않은가. “당신들 눈에는 윤석열과 검찰 밖에 보이지 않느냐”는 울타리 밖 서민들의 항변에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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