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보내며
성탄절을 보내며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12.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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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나는 가톨릭 신자다. 나는 가톨릭 정신의 핵심을 `애주애인(愛主愛人)'이라 믿는다. 풀이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성당에 다니십니까?”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며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가 있다. 그런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 겪는 온갖 고통을 다 겪고, 참혹한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셨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했고 병을 고쳐주었고, 마귀를 쫓아주었고,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에 의해서다. 더 정확히는 그들을 핍박하던 권력과 기득권이 꾸며낸 선동적인 여론전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신감과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가늠키 어렵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러고도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있다고 믿는 온갖 神 중에서 이런 神은 없다. 이웃 사랑을 삶으로 직접 보여 준 것이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존재가 어떻게 땅으로 올 수 있나?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무엇이 아쉽다고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는가? 성탄절은 이렇게 하늘의 존재가 땅으로 내려와 사람과 함께 살아간 구원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이것이 내가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까닭이며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믿음의 이유다. 하늘 존재가 땅의 존재와 눈을 마주칠 때 위로받는다. 거룩한 존재가 미천한 존재에게 무릎 꿇을 때 감동한다.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에게 머리 숙일 때 눈물이 난다. 권력이 국민을 섬길 때 사랑과 환호를 받는다.

감동과 환희는 강한 자가 약한 자가 될 때 나온다. 자신을 지키려면 권한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오래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부모들에게 무릎을 꿇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과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국민을 섬겼다면, 지금처럼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고, 약한 자에게 무릎 꿇고, 이웃을 사랑하며, 겸손히 사는 것이 성탄절에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가 전하는 구원 메시지의 핵심이다.

작금 한국 사회의 기득 권력이 보여 주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만을 지키고,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추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겉으로는 법치주의를 외치고 국민을 들먹이지만, 실상은 자기 것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적도 없고, 불의와 맞선 적도 없고,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적도 없다. 오로지 공부 잘해 시험 잘 쳐 높은 자리에 앉게 된 사람들이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삶을 결정한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추상같이 책임을 묻는다. 형평도 정의도 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부패하고 부당한 권력을 내쫓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들었던 촛불 민의가 사라졌다. 하늘 존재가 땅의 사람이 된 것처럼, 권력은 스스로 힘을 내려놓고 국민을 섬겨야 한다. 스스로 힘을 내려놓는 개혁에 함께하는 것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할 수밖에 없다.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보내며 촛불을 다시 켰다.

차가운 새벽에 빛나던 첫 크리스마스의 별처럼, 어둠을 밝히고 세상을 바꾸는 촛불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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