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민생, 지속가능성과 법치주의
본질, 민생, 지속가능성과 법치주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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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를 덮친 2020년은 아주 오래오래 기억되거나, 아예 뇌리에서 싹- 지워져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들로 남게 될 것이다.

지난주 <수요단상>을 통해 `마스크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쓰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한 올해의 커다란 이슈를 세 가지 정도 톺아보자는 의미였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토록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 일이 강제되는 세상을 어느 누가 상상했겠는가.

올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일은 이른바 `추-윤 싸움'으로 호도되는 `개혁'과 `법치'의 충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대치 구도에서 절대 상실되거나 지켜지지 못한 것은 `본질'과 선량한 대다수 국민의 민생, 그리고 지속가능성일 것이다.

우리는 `법'이 만능인 시대를 극단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개혁의 대상임이 분명한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운운되는 바람에 권력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포장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소불위의 칼날이 되어 세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함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을 말한다.'는<위키 백과>의 설명은 `본질'적으로 구차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정의'와 `국가의 강제력'일 것이다. `정의'는 사회 전체를 다스리는 의무와 권리의 틀에 해당하는 `옳음'에 흔들림 없이 위치해야 한다. 그게 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사상 초유의 징계위원회에 의한 징계가 결정된 이후에도 소위 `법대로'의 저항은 멈추지 않고 있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미덕과 선호하는 삶의 방식으로 사회적 틀을 재단하는 `좋음'과 구별하지 못한 채 인간을 `강제'하는 `법'을 맹목하고 있다.

인간으로 `법'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최소한의 도덕'이며, `도덕은 법의 최대한'이라는 윤리적 본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뉘우치면서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인간적 다짐은 `법'의 규정에 따라 강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징치하는 행위보다 무조건 선행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온통 법률가의 몫으로 독점되는 `법'의 해석을 통해 극단적인 엘리트주의를 만들고, 그들 끼리 만의 권력동맹체로 남겠다는 욕심에 공감과 이타적 배려가 작용할 공간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치주의'로 철저하게 포장되고 있는 `검찰주의'의 독점적 권력을 해체하고 이를 `선량한 평균적 인간'의 몫으로 순치시키겠다는 것이 `개혁'의 `본질'이고, 그 `본질'에 닿아있지 않은 민생은 없다.

민생이란 민주적으로 보장받는 국민의 삶의 가치이며, 모든 법은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에서 출발한다. 법은 엘리트 집단이 아닌 주권국민의 권익보호와 안정적 사회질서를 위해 기능해야 함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주권을 가진 국민을 못살게 구는 코로나19의 파괴적 질서 교란의 원인을 찾아 이를 징벌해야 하는 `본질'이 가장 시급한 법치주의이고 민생일 터인데, 여태 대한민국 검찰의 그런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법'의 뒤에 숨어 독점적 권력 유지에 담합하며 정의로운 질서에 집단행동으로 저항하는 `법률가의 독재'는 마땅한 개혁의 대상이다. 독재정권에 법과 제도의 각계를 제공하면서 탄압의 근거를 만들거나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적 열망을 범죄자로 만들거나 평범하고 무고한 시민에게 죄를 만들어 겁박하는 역사적 과오는 차마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거나 `청정에너지'등의 속임수를 통해 위험의 상주화가 계속되고 있는 `원전'의 존속과 폐지의 `본질'또한 검찰의 수사로 사라졌다. 검찰주의자들에게 개혁에 대한 저항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 과정의 과오에 대한 법률적 강제성과 구속력의 남용을 만들고 말았으니,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한 기대 또한 허망하다.

`법'보다 윤리와 도덕, 공정함, 정의, 선량함, 배려, 공감 등의 좋은 단어들이 하늘 종처럼 세상을 뒤덮는 세상을 만드는 순서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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