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겨울 산사
삼각산 겨울 산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12.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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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삼각산은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 만경대(萬景臺)의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요즘은 보통 북한산으로 불린다.

조선의 한양과 지금의 서울을 상징하는 산으로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일품인 국보급 산이다.

이 산을 오른 시인 묵객들이 많은 글을 남기고 있는데, 겨울 풍광을 읊은 것은 흔치 않다. 겨울에 눈이 많고 산세가 험하여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조선(朝鮮)의 시인 정철(鄭澈)은 한겨울에 눈 쌓인 삼각산 봉우리를 넘어 산사에 이른 적이 있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삼각산 감실에 부쳐(題三角山龕)

寺在三峰外(사재삼봉외) 산사는 세 봉우리 밖
懸崖第幾層(현애제기층) 낭떠러지 몇째 층에 있던가?
山中正積雪(산중정적설) 산 가운데라 때마침 눈이 내려 쌓였으니
盡日不逢僧(종일불봉승) 종일토록 스님을 만나지 못했네

무슨 연유였을까? 시인은 한겨울에 험한 산행에 나선다.

그 산은 다름 아닌 삼각산이고, 겨울 산행의 이유는 삼각산 세 봉우리를 지나 절벽에 걸쳐 있는 산사의 스님을 뵙기 위함이다.

큰 봉우리가 세 개라서 삼각산인데 그 봉우리들을 다 넘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봉우리 세 개를 다 넘었대도 산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층층이 겹친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사리 산사에 도착했건만, 정작 뵈러 온 스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볼 일이 있어 출타를 하셨을 터, 기다리면 곧 돌아오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단이 벌어졌다.

깊은 겨울 산 한복판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산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단은 하나밖에 없다. 큰 눈이 때마침 쏟아져 쌓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왕래가 뜸한 곳인데, 눈까지 와서 쌓였으니 아예 사람 발자국이 끊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출타하신 스님인들 돌아올 방도가 없었으리라. 시인이 뵙고자 했던 스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시인은 뜻밖의 큰 선물을 자연으로부터 받았으니, 눈이 만들어 준 완벽한 탈속과 자유가 그것이다.

삼각산 같은 명산이 아니라도 좋다. 눈 온 날은 무조건 산에 올라 보라. 물론 겨울 산행 채비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흰 눈이 만든 형형의 모습들이 황홀경을 연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눈 내린 산속은 세속이 범접할 수 없는 탈속의 도량이다. 거기서 맛보는 탈속의 해방감이야말로 사람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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