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녹나무의 파수꾼
  •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12.14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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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한 가지 소원을 빌어 이루어진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을까? 꼭 이루고 싶었던 일, 이뤘어야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중 딱 한 가지만 빌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소원을 말할까?

녹음이 짙은 커다란 나무, 두 팔 벌려 한 아름으로 둘레를 안기엔 턱없이 부족하게 큰 나무, 소원을 이야기하면 이루어지는 영험함을 가진 나무, 하지만 어떻게 소원을 비는 것인지,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더욱 신비로운 나무의 이야기를 만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이다. 녹나무는 지름이 5미터, 높이 20미터가 넘는 굵직한 가지가 뒤엉켜 크게 자라는 나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소개되어 조금은 익숙한 이 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 일본, 타이완, 중국 등에서 볼 수 있는 나무로 사계절 푸르다고 해서 녹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진 곳에 자리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월향신사 그리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녹나무의 비밀이 있다. 고목이 내뿜는 기묘한 아우라에 압도되는 나무, 우연한 기회로 녹나무를 관리하고, 신사 주위를 청소하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전이 마련된 녹나무로 안내해 주는 일을 하게 된 녹나무 파수꾼, 녹나무를 찾는 사람들은 기원이 아니라 기념을 한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히 녹나무를 찾아와 소원을 비는 행위가 단순 미신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태도는 진지하다.

그믐달과 보름달이 뜨는 날 전후로 예약을 해서 녹나무에 염원을 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는 문제아 레이토가 녹나무 파수꾼이 되어 기념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녹나무의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끝까지 읽지 않고는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녹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아니라 언어를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한 점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이에게는 태어난 이유, 살아갈 가치가 존재하며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거대한 녹나무 앞에서 뻗어 나오는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과 따뜻함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녹나무처럼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겸허한 마음과 사람과 나누어야 할 따뜻한 온기에 대해 느껴본다. 다음을 기약하기보다는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현재를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행복이리라.

만약 우리 마을에 녹나무가 있다면 어떤 염원을 전하겠습니까? 묻는다면 무엇을 후대에 전해야 할까?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그 사랑을 받으며 튼튼한 뿌리로 굵은 가지를 쭉쭉 뻗으며 커다란 나무로 자랐으면 하는 나의 사랑을 전하면 될까? 행복하고도 어려운 고민에 빠져본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지금, 녹나무로부터 푸른 위안을, 사랑을, 희망을 수념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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