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불안 걷어낸 출발 되기를
의심과 불안 걷어낸 출발 되기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2.13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해 공수처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빠르면 신년 1월에 문을 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수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 7000여명을 독립적으로 수사하게 된다. 권력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유권무죄, 무권유죄' 폐습을 척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최근 검찰이 피의자 변호사를 룸살롱에서 만나 접대받은 검사들을 온정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권력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 같은 썩은 관행도 근절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문제는 공수처가 중립과 엄정을 철저히 지키며 임무를 수행할 때 탄생을 축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에서 한치라도 벗어날 경우 나치의 게슈타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야권의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공수처법 개정으로 야당의 동의 없이도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공수처에서 일 할 수사검사 요건도 수사경력 없는 변호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대폭 낮췄다. 많은 시민들이 기대 못지않게 불안을 표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수처가 이 우려를 불식하려면 우선 지금 세간에서 터지는 섣부른 추정과 주장들을 모두 배척하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공수처가 출범하자마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비리 은폐, 월성 원전1호기 경제성 조작 등 의혹사건을 검찰서 이첩받아 뭉개버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 정권이 무리수를 둬가면서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이유가 검찰이 파고드는 이 사건들을 덮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야권에서는 또 공수처 수사검사 요건이 크게 완화돼 법조 경험도 없는 민변과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들이 공수처 수사라인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낸다. 이념과 정치 중립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강욱 열린우리당 의원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윤석열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했다.

공수처가 문을 열며 이 중 한가지라도 추진한다면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이 검찰공화국이 됐다고는 하지만 온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무법천지는 아니다. 특히 이 사안들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했음에도 무혐의 판결을 받은 사례로 남아 공수처 설치에 오로지한 정권의 충정을 뒷받침할 명분이 돼야한다. 정권이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오해의 근원이 돼서는 안 된다. 공수처의 궁극적 목표도 검찰 잡기는 아니지 않은가.

수사진 구성은 향후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만큼 더 신중해야 한다. 수사검사를 뽑을 인사위원회 구성조차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은 인사위원회에 야당이 추천하는 위원 2명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공수처 출범에 반대하고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결사 저항했던 국민의힘이 인사위원을 추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사위를 구성하려면 야당의 인사위원 추천조항을 없애거나 위원회 개의 규정을 바꿔야 한다. 여당이 스스로 발의·통과시킨 법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두 차례나 단독으로 개정하는 희극이 벌어질 공산이 높아졌다. 공수처장에 수사검사까지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 중립성 논란은 더 뜨거워질 터이다. 이런 곡절과 격론을 거치고도 공수처장과 수사검사 인선이 객관성을 잃는다면 공수처의 앞날은 험난해진다.

대통령은 공수처법이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공수처 출범 자체가 기회일 수는 없다.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더라도 공수처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전제됐을 때 기회로 작동한다. 공수처의 출발이 의심과 불안으로 채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