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발, 주먹
입, 발, 주먹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12.09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엊그제 월요일에 작은 소모임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했다기보다는 발제를 통해 이야기 나누기의 마중물 제공 정도랄까? 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면면은 정말 한시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바쁜 자리, 바쁜 업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주제는 `초등학교 교육의 정체성', 사실 정체성이라고 썼지만 중요성이라고 읽어야 맞을 것 같은 초등학교교육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논의의 대주제였다.

학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했지만, 사실 초등학교교육의 정체성은 학부 1학년 때 공부한 것이 전부라 발제를 준비하면서 기억과 지식의 저 너머를 들추기 바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발제는 듣는 사람보다 발제를 한 필자에게 많은 공부가 되었다.

흔히 초등교육이라 일컬어지는 초등학교교육은 초등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교육의 입문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초보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라 정의되곤 한다. 일차적으로 그 정의가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제도적 의미에서 볼 때, 우리 교육 제도의 체계에서 가장 먼저 받게 되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기관이 초등학교이고, 그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초등학교교육이니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초등교육이라고 이야기되는 초등학교 교사가 하는 교육, 초등학생이 받는 교육이 곧 초등학교교육이다.

초등교육에 대한 다른 의미는 위계적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떠한 것의 수준을 내용의 양과 질, 난이도 등의 기준으로 구분할 때, 보다 높은 수준의 것과 대비되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수준이 바로 초등 수준이다. 차례로 올라가는 단계에서 맨 처음의 등급, 이 등급을 지나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위계에 있는 개념이 초등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초등의 의미는 단지 초보적이라는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 기초, 원리 등 진리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의 원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계의 가장 아래에 있다고 가장 낮은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에 있으므로 가장 중요한 토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교육은 중등학교교육에 비해 학습자의 특성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 유치원을 막 졸업한 1학년과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년은 발달 단계로 볼 때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여 초등학교 교사 전문성에 있어 학습자인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저학년 어린이들의 활동 에너지는 `입'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다. 1, 2학년 어린이들과 잠시라도 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어린이들은 한시라도 입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때 경험 있는 선생님은 어린이 자신의 입에만 집중된 에너지의 방향을 선생님의 이야기 듣기로 전환하게 만드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중학년 어린이들의 활동 에너지는 `발'에 있다. 3, 4학년 어린이들은 움직여야 하고, 움직임을 통해 학습한다. 역량 있는 선생님은 지식을 활동으로 전환하여 수업을 만들어 간다. 고학년 어린이는 `주먹'에 집중한다. 주먹은 곧 힘, 교실 안의 리더에게 집중한다. 좋은 선생님은 5, 6학년 어린이가 스스로 공부하도록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리더로 교실 안에 존재한다. 이처럼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수업을 만들어가는 핵심으로 작용한다.

초등학교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삶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면에서, 원대한 지식에 대한 열망을 품게 한다는 면에서, 완전성이라는 인간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면에서 등등. 전달할 지식의 양은 적을 수 있지만, 그 역할은 무궁하다. 특히 그 바쁜 와중에도 초등학교교육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일손을 놓고 공부 모임에 참여한 그 사람들만 보아도 초등학교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무언가의 중요성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 드러나 버리니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