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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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12.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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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순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어젯밤 뒤척이다가 결국은 잠을 설쳤다. 이른 아침 엄마와 통화가 끝난 후부터 마음이 복잡하더니 온종일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엄마가 드시는 약이 떨어져서 월요일에 병원에 모시고 가겠다고 했는데, 일요일 아침에 퉁명스런 말투로 `왜 안 오냐'며 다그치는 전화를 하셨다.

올해 코로나로 한가해지면서 엄마 집을 자주 들렀다. 남동생과 함께 살고 계시지만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시고 살림을 하셨다. 갈 때마다 청소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해도 그때뿐이다. 군말 없이 상한 음식을 버리고 쌓여 있는 그릇을 씻었다. 인공관절 수술 후에도 바닥에 앉지 못하는 몸으로 본인의 식사를 해서 드시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마를 향해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떡국을 사서 드시고 남으면 비닐봉지에 싸서 가져 오시는데 매번 안 드셔서 갈 때마다 버린다. 과일은 있는데 또 사고, 감자며 고구마는 한 상자씩 사는 바람에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다.

작년 여름에 벼르고 별러 보건소에 모시고 가서 치매검사를 받았다.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지 기억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받아서 지금까지 드시고 계시다. 약이 떨어진 지 열흘 정도 됐지만 코로나가 심해져서 병원 방문이 두려웠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마와 함께 생극에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다. 이틀 전에 들러서 치웠었는데 방치해 둔 집처럼 또 음식물이 썩고 있었다.

매번 음식을 버리면서 왜 자꾸 사기만 하고, 게장은 안 드시냐고 되물으면 아들이 좋아해서 남겨두는 거라고 하신다.

요즘 들어 엄마의 기억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 갑자기 두려워진다.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가려는데 찹쌀 한 말을 가져가라신다. 딸내미 주려고 두 말을 사셨단다. 제발 엄마만 생각하고 엄마 드실 거만 사라고 또 한 번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는 꾸중 듣는 아이처럼 작은 소리로 `알았어, 알았어' 하신다.

얼마 전 남편이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지난주 큰아들이 돈 좀 보내달라 했는데 돈이 없어서 부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더니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그때 부치지 못한 돈을 보내겠노라며 계좌번호를 보내라고 한다. 부모란 이런 마음일까? 많은 것을 주고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 주지 못했을 때 더 안타깝게 여기고 마음의 짐을 더께로 쌓아두고 사나 보다.

가까운 지인 중의 어떤 이는 가끔 푸념 어린 말투로 `부모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자신은 할 만큼 다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과연 어떤 잣대로 잴 수 있길래 해준 것과 안 해준 것을 가늠할 수 있고, 부모와 자식의 도리가 끝이 있는 걸까?

기억의 실타래가 엉켜 있는 상황에서도 이건 둘째 딸이 좋아하고, 막내아들 몫으로 아껴두고, 큰딸까지 잊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쓸데없이 눈물이 많아졌다. 내가 두 아들의 부모로 살아온 지 이십 오년이 넘어서야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투덜거리며 돌아서는 손안에 찹쌀자루를 들려 주며 아이 달래듯이 말을 건네는 엄마의 뒷모습에 눈시울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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