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꿈
제자의 꿈
  •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 승인 2020.12.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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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수십 년간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그동안 종교를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형사처벌을 받아왔다. 그러나 거듭된 논란 끝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가 지난 10월 26일 처음 도입됐다. 이 대체복무제 시행되는 그날, 필자는 문득 한 제자가 떠올랐다.

그는 20년 전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담임을 맡았을 때의 제자였다. 그 시절 대부분의 인문고는 주말에도 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었다.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하기 싫은 것. 더욱이 청소년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주말에 등교가 싫었던 아이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율학습을 빠지려 들곤 했다. 필자는 자율학습에 빠지는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이유없이 자율학습에 빠질 경우 단단히 벌을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화장실 앞을 지나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혹시 아이들이 싸우기라도 하나 싶어 달려가 보니 한 학생이 화장실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 있었다. 내 반의 아이였다.

깜짝 놀라 아이들에게 상황을 묻기에 앞서 그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엄한 선생님에게 걸렸으니 모든 아이들은 속된 말로 “죽었다”라고 중얼거리는 듯했다. 아이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였다. 상황을 알아본즉슨, 전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몇몇이 술을 마셨는데 그 아이는 술이 처음인데다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술을 마셨던 모양이었다. 아침까지도 술이 안 깨자 조회 뒤 화장실로 달려가 바닥에 누워 있다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기 몇 달 전, 그 아이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주말에 자율학습에 나올 수 없다고 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종교문제 때문이었다. “너는 학생이고 더군다나 고3인데 신앙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너와 같은 종교를 믿는 애들은 주말에 잘 나오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하였더니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부모님의 뜻이 그렇다는 거였다. 며칠 후 부모님을 면담해보니 부모님의 뜻은 완강했다.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격주로 주말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때 아이는 학교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평범한 학교생활을 무척이나 원했다. 그 제자의 꿈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고민하다 3학년 말, 화장실 주취사건을 벌인 거였다.

세월이 흘러 3년 전쯤, 필자가 진천의 한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폰을 울렸다.

처음에는 받지 않다가 거듭 걸려오는 전화에 통화를 하게 됐다.

“혹시 김진균 선생님이신가요? 저는 ○○○인데요.”“너 혹시 ○○고 졸업한 ○○○이구나.”“예, 맞습니다.”

너무도 반가웠다. 늘 마음 한켠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제자인데, 졸업한 지 17년 만에 연락을 해온 거였다.

다음날 학교로 찾아온 제자로부터 졸업 후 생활을 듣게 됐다. 제자는 그의 형처럼 종교문제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모두 교도소 복역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교사의 꿈도 접게 됐다고 했다.

고민 끝에 그는 9년 전 호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결혼한 뒤 `치기공'일을 하며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날 제자와의 만남은 더없이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담임으로, 또 인생의 선배로 내가 무엇을 해줬나? 왜 그때 교사로서 좀 더 고민을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앞섰다.

그 제자가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는 요즘 고3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평범하게 학교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어했던 그의 꿈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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