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수 데자뷰 전두환
정춘수 데자뷰 전두환
  • 오영근 선임기자
  • 승인 2020.11.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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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24년 전인 1996년 2월. 청주지역사회에는 우암산 3.1공원 내 정춘수 동상 철거문제로 여론이 들끌었다.

3.1독립선언 33인 중 한 명인 정춘수의 친일행각을 들어 그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요즘 들끓고 있는 청남대 내 전두환 등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철거 논란은 정춘수 동상철거의 데자뷰다.

말만 데자뷰가 아니라 전두환 동상철거 논란 전 과정이 24년 전 정춘수 동상철거 때와 쏙 빼닮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충청북도가 먼저 동상철거의 의지를 보였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정춘수 동상철거 논란은 현 민주당 도종환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충북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 요구로 불붙었다.

당시 주병덕 지사는 오랜 논란 끝에 정춘수 동상철거를 전격 결정했다. 그리고 청주시에 이의 이행을 지시했다.

요즘 청남대의 두 전직 대통령 동상철거 논란은 5.18 관련단체의 요구로 촉발됐다.

이시종 지사는 도정자문위원회 의견까지 듣는 숙고 끝에 동상철거 방침을 결정했다.

24년이 흘렀지만 동상철거 방침이 결정되는 과정은 너무 흡사했다. 데자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상철거 방침 결정 후 보여준 행정기관의 갈팡질팡하는 민 낯은 더 똑같았다. 정춘수 동상철거 땐 청주시가 그랬다. 당시 청주시는 도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24년 뒤 불거진 전두환, 노태우 동상철거 논란에서는 충청북도가 그랬다. 동상철거 결정에 대해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의 반발이 거세자 충북도는 당초의 입장과 태도를 바꿨다.

도의회까지 나서 동상철거에 명분을 실어 주려 했지만 도는 되레 도의회에 그 공을 넘기려 꼼수를 썼다. 말 그대로 무소신 행정이었다. 갈팡질팡하는 행정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엉뚱한(?) 결과를 빚었다.

24년 전, 정춘수 동상은 시민단체의 철거 시위 와중에 좌대에서 고꾸라져 머리부분이 박살 났다.

24년 후 전두환 동상은 경기지역 5.18 관련단체 회원인 50대 황모씨에 의해 목 부위가 잘려졌다.

엉뚱한 일에 대한 청주시와 충북도의 대처도 비슷했다. 정춘수 동상 훼손 때 청주시는 시민단체 관련자를 고발했다. 충북도 역시 동상을 훼손한 황씨를 고발했다.

여기까지 24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진 두 사건은 마치 한 사건처럼 닮아도 너무 닮았다.

하지만 다른게 하나 있다. 시계를 24년 전으로 되돌린다. 1996년 2월8일. 그날은 2·8독립선언 기념일이었다.

시민단체와 대학생 등 백여명이 정춘수 동상을 강제 철거하겠다며 우암산 3.1공원으로 몰려들었다.

청주시의 거듭된 미온적 태도에 경찰은 이미 시위저지를 거부한 상태였다. 대신 청주시 공무원 6백여명이 시위대와 맞섰다. 하지만 허수아비였다. 5분 만에 구멍이 뚫렸고 시위대는 정춘수 동상에 광목천 밧줄을 걸었다.

그러나 밧줄을 당기지는 않았다. 청주시에 다시 한 번 자진철거 의사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때 시위대 앞줄의 대학생들이 생각 없이 밧줄을 당겼다. 동상은 맥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져 박살 났다. 이 사건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한 보수신문은 `청주에 공권력이 없던 날'이란 사설로 시민단체를 무법, 탈법 시위대라며 치도곤쳤다. 급기야 대검찰청까지 나섰다. 관련자들을 전원 구속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청주지검은 신중했다. 당시 여론을 감안해 관련자 8명을 불구속하는 선으로 후퇴했다. 백 투 더 퓨처!

24년 뒤 전두환 동상을 훼손한 황씨. 그는 곧바로 구속됐다. 두 사건이 한 사건처럼 닮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다. 하긴 정춘수 동상 철거 그때는, 일본의 독도망언으로 항일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니… 그럼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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