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상대(刮目相對)
괄목상대(刮目相對)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0.11.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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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학문을 제대로 하는 선비는 사흘만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도 몰라볼 만큼 크게 발전해 있는 탓에 눈을 비비고 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의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유교의 고사성어가 있다. 불교에는 사흘이 아닌 하룻밤 새 어진 사람으로 바뀌는 법도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룻밤 사이에 어진 사람이 되는 비결은 바로,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으니 집착하지 말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갈구하지 말며, 오직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흔들리지 말고 정확히 보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온전하게 깨어 있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 뒤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실존적(實存的) 삶을 오롯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합리적이고 실존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먼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인식하는 정견(正見)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후에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正思)가 뒤따라야 한다. 바르게 생각한 뒤에는 그 생각이 바른말과 바른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따라서 목전의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인식-파악하는 정견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바른 생각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정견이 가능하기 위해선, 이런저런 과거의 기억이나 자신의 치우친 가치관 등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0점 조정된 저울만이 정확한 물건의 무게를 달 수 있듯이, 그 어떤 색안경도 끼지 않은 정견만이 성공적 삶의 첫 단추가 된다.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견이 이뤄졌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를 좌우하는 생각이 지혜롭고 올바르지 못하다면 즉, 정사(正思)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코 바른말과 바른 행동을 할 수 없고, 바른말과 바른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바른말과 바른 행동을 해야 하고, 바른말과 바른 행동은 바른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바른 생각은 목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인식하는 정견(正見)이 전제돼야만 가능하며, 정견은 그 어떤 주의 주장과 사상 및 가치관 등 일체의 색안경을 벗어 던진 지공무사한 순수의식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까닭에 공자님은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군자라는 의미로, 군자는 그릇이 아님을 역설하신 바 있다. 이미 우리 편인 A는 맞고 상대편인 B는 틀렸다는 색안경을 낀 상태라면, 무조건 A가 옳고 B가 그른 것으로 볼 뿐, 정견은 불가능하다. 정견이 이뤄지지 않은 채, 일으키는 생각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 그릇된 생각이며, 그 생각에 따른 말과 행동 또한 그릇될 수밖에 없다. 0점 조정된 저울처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지기 전의 순수의식 즉, 지공무사한 마음만이 내 편도 틀린 것은 틀리다고 인정하고 상대편도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면서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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