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어린 친구들
우리 부부의 어린 친구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0.11.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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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나에게 친구가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 부부에게 친구가 생겼다. 우리보다 마흔 살 이상이나 차이 나는 어린 친구들이다. 혹자는 친구 관계가 성립되는 나이 차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웃어른이 해야 할 도리, 아랫사람이 지켜야 하는 예의를 분명하게 구분 지어 놓고 지키길 교육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관계임은 맞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고 싶다. 혈연관계 없고, 여타 이해관계 없으니 친구로 지내고 싶다. 이웃 친구 말이다.

그 아이들은 위층에 사는 남매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꼬박꼬박 정성들여 인사를 잘하는 예의 바른 아이들이다. 그런 이웃이었다. 지난 8월까지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여름. 우리 집 천장에서 물이 새는 사고가 발생했다. 위층은 거실 바닥 공사에 들어갔고, 소음은 덤으로 우리 집까지 공격했다. 무더위와 먼지, 소음 속에 있을 아이들이 맘에 걸려 올라가 봤다. 영락없이 고생 중이었다. 남매는 각자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숙제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아이들 손목을 잡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친구관계의 시작이다.

이묘신 작가의 <쿵쾅! 쿵쾅!/아이앤북/2020>은 이런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건강한 사내아이 두 놈이 있는 위층! 뛰고, 구르고, 드잡이하듯 노는데 어찌 시끄럽지 않겠는가. 그 부모들 또한 마냥 뛰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지만, 아래층에서는 마치 이리저리 날뛰는 동물들이 있는 듯한 무게감으로 와 닿을 것이다. <쿵광! 쿵쾅!>은 양쪽의 괴로움을 모두 알아주고, 얌전히 놀기에는 너무도 심심한 아이들의 고민까지 재치와 해학으로 풀어낸 재미 진 이웃관계 그림책이다.

층간소음에 대한 문제를 작가 이묘신은 아래층 사는 할아버지 즉 웃어른의 역할로 풀어냈다. 인디언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게 어디 그들에게만 있는 미덕이겠는가. 우리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온 동네 어른들의 눈길과 손길이 우릴 보호해 줬었다. 엄마가 안 계실 땐 밥도 챙겨주고, 친구들과 싸우기라도 하면 내 편도 들어주며 말이다.

물론 시절이 어수선해서 동네 어른이라고 함부로 따르기도 어렵긴 하다. 허나 시대 불문하고 여전히 아이들에겐 어른의 역할은 중요하다. 서울신문(2020. 11.5)은 소년범 27명을 심층인터뷰하고 이 과정에서 수집된 단어를 `의미망 분석'작업을 하여 핵심 키워드의 `겉의미'와 `속의미'를 추출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각 속에 자리한 어른의 모습도 드러났다고 한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기댈 존재가 없는 데 대한 불안과 외로움이 묻어났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늘 동백이 편을 들어주던 이웃 아줌마, `스타트 업'에서는 잠잘 곳 없는 어린 고아에게 선뜻 가게 열쇠를 내어 주던 어른의 캐릭터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끌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책 속의 아래층 할아버지가 그랬듯 이웃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시끄러움보다 아이가 먼저 보일 것이다. 금지보다는 허용을 해 줘 보자. 아이들은 조절, 통제 후 맛보는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며 성잘 할 것이다. 훈계나 잔소리보다는 아이들 말을 들어 보자. 일 년 후, 아니 십 년 후의 아이들을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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